겨우내 먹고 남은 동치미 통을 정리하다보니 어렸을 때 눈이 내린 추운 겨울밤이 떠오른다. 예전에는 4월의 동치미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지만 요즘은 김치 냉장고가 있어 가능해졌다. 하지만 예전의 항아리에서 살 얼음 깨고 먹던 맛은 나지 않는다.
40년전 충청도 시골에도 해마다 추운 겨울이 찾아왔다.낮이 짧은 탓 에 이른 저녁을 먹고 긴 겨울밤 잠은 오지 않지 입은 심심하고 배가 출출해지면 간식거리가 따로 없던 시절이었기에 누워 잠을 청해보지만 잠은 멀리 달아나버리고 눈만 말똥말똥 반짝였다. 아버지도 잠이 오지 않으시는지 밖으로 나가시고 잠시 후 쟁반에 무엇인가 들고 들어오셨는데 찐 고구마와 동치미를 가지고 오셨다. 어머니가 썰은 예쁜 모양과 달리 쭉쭉 길게 4등분으로 잘라서 커다란 동치미 였다. 그 큰 동치미를 젓가락으로 푹 찍어서 입이 미어지게 한 입 베물어 먹고 국물을 마시면 알싸하고 시원한 맛 이 사이다같이 톡 쏘면서 가슴이 그야말로 "뻥" 뚫리는 듯 말로는 다 할수 없는 맛 이었다. 긴 겨울밤이 그렇게 행복하게 지나가곤 했다. 동치미 국물에 말아먹던 국수, 객지에서 직장 다니는 큰 오빠가 오면 해 주시던 굴 을 넣은 물 회, 지금은 오이, 배 ,통깨 등 온갖 재료들을 넣어 보지만 그때 동치미 국물과 굴 만 넣었던 물 회에 비길 것이 못된다. 지금은 곁에 계시지 않지만 마치 곁에 계신 것처럼 모든 것이 그리움이 되어 되 살아 나곤 한다. 가난하고 모든 것이 부족한 시절 이었지만 온 가족이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고 웃으면서 지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결혼해서 22년째 동치미를 담가 먹고 있지만 그 어린 시절의 맛은 내고 싶어도 내지지 않는다. 그래도 두 딸들은 우리 집 동치미가 제일 맛있다고 한다. 동치미를 먹어보지 못한 아이들도 많이 있다고 ,하지만 우리는 겨울마다 먹을 수 있어서 겨울이 기다려진다며 동치미 없는 겨울은 상상도하기 싫단다. 이웃들도 조금씩 나누어 주면 아파트에서도 동치미를 담글 수 있냐고 놀라며 맛있다고 칭찬해 준다.
나중에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 두 아이들도 나와 동치미를 떠올리며 행복해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