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날 먹은 쑥개떡

조회수 12971 추천수 0 2012.05.03 13:49:15

지금 50대 중반인 나의 어린시절은 늘 먹을 것이 부족했다.

논이 있었지만 식구가 겨우 먹을 수 있는 양의 쌀 밖에 수확할 수 없는 1500평이 가진 것의 전부였으니 다른집에서는 흔히 텃밭에 고추, 감자, 파, 깻잎 등을 심어 반찬을 자급자족하는 대다수의 농사꾼하고는 다르게 우린 모든 야채도 사서 먹어야 했고, 수입없이 논농사만 짓는 집에 부모님과 4남매 여섯식구가 세 끼를 제대로 먹을 수 없었다. 그저 봄이 오면 들에 나가 냉이를 캐다 국을 끓여 먹거나

여름이 지나면 길에 난 질경이를 뜯어 볶아먹곤 했다.

생활이 이러다보니 우리는 어려서부터 가난이 몸에 베고 부모님께 무엇을 해달라고 조르면 안된다는 것을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았다. 남자형제 3명 가운데 낀 나는 딸이라 더욱 부모님 신경쓰이지 않게

티나지 않게 조용히 살았다. 엄마는 오빠는 옆도시의 학교에 나는 집에서 5리(2km)쯤 떨어진 시골학교에 보냈다.그리고 나는 늘 도시락을 싸가지 못했다. 국민학교(초등학교) 3학년 소풍 때 였다. 그 학교는 학교에서 20리쯤 떨어진 회암사가 단골 소풍지였다. 먼지가 풀풀나는 포장되지 않은 도로를 뜨거운 햇볕에 땀을 흘리며 걸어서 도착하자마자 점심시간이 되었다. 왁자지껄한 가운데 삼삼오오 모여서 싸가지고 온 도시락을 펴기 시작할 때 나는 슬그머니 일어나서 사람이 없는 으슥한 나무사이로 들어갔다. 나뭇가지를 주워 낙엽을 치우며 작은 소리로 노래를 웅얼거리고 어느정도 시간이 흘러 식사시간 후의 집합장소로 천천히 걸어가는데 소풍 따라온 동네 아주머니 한분이 나를 보더니 " 너 엄마가 찾던데 어디있었니?" 라고 물으셨다. "엄마가 왜요?" 부리나케 엄마를 찾아 뛰어갔다. 나를 본 엄마는 다정한 목소리로 "소풍간다고 말을 해야지. 도시락도 없이 왜 그냥 왔어? 이거 먹어.배고프겠다. "

하시며 도시락을 내게 주셨다. 뚜껑을 열어보니 그곳엔 쑥을 넣어 만든 개떡이 들어있었다.

엄마는 내 손을 끌더니 장사꾼에게로 가서 미지근한 병 사이다를 사서 목이 메이지 않게 함께 먹으라고 주셨다. 그 때의 그맛이 어땠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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