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혼 생활은 일본에서 시작되었다. 유학 중이었던 남편을 따라 겁없이 시작한  이국에서의 생활. 아는 이 하나 없었고,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간단한 인사가 전부였다. 공부하느라 여념이 없는 남편의 도움은 꿈도 꿀 수 없었고, 나혼자 직접 부딪치면서 알아가는 그야말로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다.

신혼이라서 그랬을까. 어설프지만 요리책을 보아가면서 한국 음식 비슷하게 만들어놓으면 맛있게 먹어주던 남편.  일본 음식의 맛에도 하나둘씩 익숙해지면서 생활의 재미를 느껴갈 즈음 첫 아이를 임신했다. 어찌나 입덧이 심하던지...그렇게도 즐겨 먹던 일본 음식은 정말 꼴도 보기 싫고, 어렸을 적 엄마가 해 주시던 한국 음식이 그리웠다.  길거리에서 먹던 떡볶이의 매콤한 맛도 생각나고, 된장으로 조물조물 무친 씨래기 나물에, 아삭아삭 소리까지 맛있는 오이 소박이...그 맛을 찾기 위해 한국 식당 순례에 나서기를 여러번. 주문을 해 놓고 기다리는 동안의 설레임도 잠시, 식탁에 올라오는 음식들은 일본인들의 입맛에 맞게 변화시킨 것들이었다. 게다가 한국 음식들은 어찌나 비싼지 주머니가 가벼운 유학생 부부에게는 너무 큰 부담이었다. 참 많이도 한국을, 엄마의 손 맛을 그리워했던 시간들이었다.

  힘들었던 입덧의 시간을 뒤로 하고, 무사하게 열달을 보내고 일본 병원에서 출산을 하게 되었다. 얼마나 아팠던지 진통을 하면서 남편에게는 일본말을, 일본인 간호사에게는 한국말을 하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아이를 낳았다. 한국사람의 체통을 지켜야 한다고 소리한번 지르지 않았던 것 같다. 저녁 늦게 아이를 낳고 다음날 아침 받은 밥상....지금도 어제일처럼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우동을 간장과 기름에 살살 볶은 야끼 우동에 허여멀건한 된장국, 매실을 절인 우매보시. 여기에 후식은 금방 냉장고에서 꺼낸 차가운 캔 음료였다. 일본은 우리와 달리 산후조리를 안한다는 이야기를 누누히 들었지만 참 막막했다. "고슬고슬하게 갓 지은 하얀 쌀밥에 푹 끓인 미역국이 아니구나. 그래, 여기는 내 나라가 아니구나."    웬지 서글프고 마음 한 켠이 텅 빈 것 같은 느낌. 배는 고픈데 쉽사리 손이 가지 않아 멍하니 앉아있던 바로 그때.

큼지막한 보온병을 들고 남편이 들어왔다. 그 보온병 안에는 기숙사에서 함께 살고 있는 다른 유학생 부인이 끓여준 미역국이 들어있었다. 얼마나 반갑던지, 얼마나 고마웠던지...정말 감동 그 자체였다. 게다가 그 맛은 내가 평생 먹어본 미역국 중에서 최고였다. 그날부터 일주일 동안(일본은 자연분만을 하면 일주일 동안 병원에 있다 퇴원한다) 여러가지 맛의 미역국을 맛볼 수 있었다.  한국 유학생 부인들이 돌아가면서 한번씩 미역국을 끓여 주었던 것이다. 소고기를 넣어 푹 끓인 것, 홍합과 바지락으로 시원한 맛을 낸 것, 굴을 넣은 미역국...매일매일 다른 맛의 미역국으로 나의 병원 생활은 행복했다. 병원에서 나오는 반찬을 손 대지않는 나를 찾아온 간호사가 내가 먹고있던 미역국을 보며 한 말은 "저 미스테리한 검정색 스푸는 무엇입니까"였다. 그렇게 여러사람의 마음과 정성을 담은 미역국을 먹을 수 있게 해 주었던 우리 첫 아이. 벌써 키가 훌쩍 큰 13살이다. 그래서였을까. 우리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국도 바로 미역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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