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15일에 결혼한 저는 결혼 2주 만인 1월 30일에 남편을 벨기에라는 낯선 나라로 유학을 보내야 했습니다. 1년이고 2년이고 기다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참 힘들더군요. 남편을 보내고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나자 내가 결혼은 한 건지 만 건지 자꾸만 우울한 생각이 들어 세 달째 들어서면서 바로 비행기 티켓을 끊었습니다. 양가 어른들은 그럴 줄 알았다며 성능 좋은 전기밥통과 된장, 고추장, 김치에 김, 미역 등 먹을거리를 잔뜩 챙겨주셨습니다. 너풀거리는 태국 쌀을 먹는다기에 쌀까지 조금 챙겼습니다.
터질 듯이 짐을 꾸려 벨기에로 입성했는데 며칠은 정말 좋더군요. 엽서에서나 봤을 법한 건물들, 노천에 앉아 한가로이 맥주를 즐기는 사람들, 처음 타보는 트램. 그리고 먹을거리들도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우선 벨기에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따끈따끈한 정통 와플과 초콜릿을 먹었습니다. 정말 맛있더군요. 벨기에 사람들이 와플보다 더 많이 먹는다는 프리트(감자튀김)와 홍합요리를 맛보고는 이곳이 나에게 꼭 맞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딱 한 가지 절 힘들게 하는 것은 벨기에의 날씨였습니다. 유럽 날씨에 대한 이야기는 익히 들었지만 그렇게 변덕이 죽 끓듯 한 곳인지 정말 몰랐습니다. 아침에 긴 팔에 바람막이 점퍼를 입고 나가면 점심쯤엔 점퍼를 벗고 팔을 걷어도 더운 날씨가 되고 오후에는 꼭 소나기가 추적추적 내렸습니다.
간절기면 꼭! 반드시! 감기에 걸려 된통 고생을 하고 넘어가는 체질인 저는 아니나 다를까 2주 만에 심한 열 감기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열이 올라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겠는데 헤롱헤롱 하는 머릿속에 왜 떡볶이가 떠올라 사라지지 않는 것인지. 제가 가져온 산더미 같은 짐 어디에도 떡은 없었습니다. 와플이니 초콜릿이니 그땐 단 것은 정말 쳐다보기도 싫었습니다. 떡볶이 하나 못 먹는 것이 어쩜 그렇게 서럽던지 저는 떡볶이가 너무 먹고 싶어 엉엉 울고 말았습니다.
남편은 떡볶이를 먹어야 낫겠다는 저를 안쓰러워하며 곳곳에 수소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벨기에 내에는 떡을 구할 수 있는 곳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독일에 거주하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떡을 구할 수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다행히 베네룩스까지 배송이 가능하다는 안내문을 보고 20유로의 배송비를 물어가며 떡볶이 떡과 어묵을 주문했습니다. 입금확인과 동시에 배송이 시작되어 이틀 반이 걸리더군요.
남편은 인터넷으로 만드는 법을 찾아 제가 잠자는 틈에 떡볶이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모양과 냄새가 그럴 듯 했습니다. 맛은... 사실 저의 남편은 매운 것을 못 먹습니다. 남편은 맵게 했다고 하지만 제가 먹기에는 조금 닝닝하더라구요. 그래도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습니다. 그리고 힘을 내서 감기와 싸웠지요. 올 초 저희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동네에서 유명한 시장떡볶이며 유명 브랜드 떡볶이며 원 없이 사먹고 있습니다. 그래도 닝닝하고 달짝지근했던 벨기에 떡볶이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귀한 떡볶이를 또 맛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