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에 같은 직장에서 오래 보아온 입담 좋은 경상도 남자에게 반해 가정을 꾸린 지 벌써 십년이 훌쩍 넘었다. 그 당시 나는 인천에서 서른 해 가까이 살아온 나름 도시처녀였는데 경상도 사투리가 구수했던 그 남자가 왠지 진솔하게 느껴지면서 끌렸던 것 같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나니 이것저것 부딪히는 것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 가장 접점을 찾기 힘들었던 것이 바로 식성!
평소 육식이나 가공식품을 즐겨먹던 나와는 달리 남편은 손이 많이 가고 시간이 걸리는 나물이나 채소반찬을 원했다. 나는 그것이 귀찮고 번거롭게 느껴졌고 그의 식성이 너무나 불만이었다. 그런데 결혼 후 처음 맞은 휴가를 시댁에서 보내면서 남편 식성의 원천을 알게 되었다. 온통 산나물과 야채쌈으로 차려졌던 어머님의 밥상은 남편이 늘 원하던 그 자체였던 것이다. 거기에 새로운 한 가지가 더 있었으니 그것은 반찬마다 뿌려진 재피가루.. 이 재피란 것이 일종의 향신료인데 향과 맛이 너무나 독특해서 나는 도저히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매번 식사가 힘겨웠던 나와는 달리 남편은 이제야 제대로 된 식사를 한다는 듯 너무나 먹성좋게 그릇을 비워냈다. 그런 남편이 참 얄미웠고 시댁에서 지내는 내내 외롭기까지 했다. 생소했던 시댁처럼 생소했던 재피.. 결혼 후 몇 해가 지나도록 시댁만큼이나 어려웠던 것이 바로 이 재피의 맛과 향이었다. 집으로 돌아올 때 어머님께서 꼭꼭 싸매주셨던 재피가루를 냉장고 구석에 쓱 밀어넣고 반찬에 넣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내 방식으로 차려진 우리만의 밥상에 남편을 길들여 보려했다. 하지만 남편은 냉장고 구석에서 용케 재피가루를 찾아냈고 결국 나는 포기하듯 그 독한 것이 왜 먹고 싶냐고 물었다. 남편의 대답은 단순했다. 어릴 적 추억을 느낄수있는 향수같은 거라고..지리산을 놀이터 삼아 어린시절을 보냈던 남편에겐 갖가지 산나물과 그 알싸한 재피의 향이 떠나온 고향산천과 어머니를 떠오르게 하는 매개였던 것이다. 향수가 느껴지는 음식,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향료라는 그 말이 그때 나에게는 별로 와 닿지 않았다. 난 딱히 떠오르는 추억의 음식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내 나이 중년에 이르자 남편의 식성에 대한 나의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생각뿐만이 아니라 나의 식성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남편의 고향은 나의 고향처럼 되었고 어머님의 그 심심한 나물반찬이 가끔 그립기도 하였으며 점점 나의 밥상도 어머님의 그것을 닮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부부로 살아온 세월이 그냥 흐른 것은 아닐게다. 서로를 이해하는 만큼 닮아버린 식성.. 이제는 그 생소하고 역하기만 하던 재피가 그럭저럭 먹을만하다. 늘 어려울 것만 같은 시댁이 이젠 식구같다. 재피향에서 남편이 어머님이 지리산이 느껴진다. 나에게도 특별해진 재피!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법을 알게해 준 고마운 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