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여름, '마당 넓은 집' 이웃과 만들어 먹던 콩국수
1980년대 초반, 내가 초등학교 시절 우리 가족은 마당 넓은 집에 살았다. 오해하지 마시라. 여기서 마당 넓은 집이란, 사람들이 상상하는 이층집 푸른 잔디가 깔려 있는 마당이 아니다. 커다란 마당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 마당을 중심으로 주인집과 세 들어 사는 세 가구가 둥근 원을 그리며 있었다.
마당 한 가운데는 수도가 있었고 지금은 볼 수 없는 펌프도 있었다. 가난했던 시절이었다. 네 가구의 사람들은 복작복작 살았다. 한 가족은 아니었지만 우린 모든 것을 공유했다.
모두들 녹슨 초록 대문으로 드나 들었고, 대문 옆 가꾸지 않아 푸석해진 화단에는 누군가 몰래 꽃씨를 심어 꽃이 피고 졌다. 또 가끔은 누가 상추와 고추도 심어 함께 나누어 먹었다. 마당 한 켠에 있는 장독대에는 크고 작은 항아리들이 놓여 있었다. 장 인심도 좋아 고추장, 된장 서로 퍼다 먹으면서 정을 나눴다.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시간엔 서로 수도 가를 차지하려고 줄을 섰고, 하나 밖에 없던 ‘푸세식’ 공동 화장실 앞에도 아침마다 줄지어 서 있는 풍경이 연출됐다.
이 가난한 마당의 풍경이 가장 풍요롭던 때는 네 가족들이 마당에서 함께 음식을 해먹을 때였다. 어느 때는 어른 몸체보다 더 큰 돼지 한 마리를 마당으로 끌고 와 가장들이 돼지 몰이를 하며 돼지를 잡아 걸판지게 잔치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뜨거운 여름, 콩국수를 해먹던 기억이다. 집집마다 큰 양은 그릇에 콩을 내와 누군가 빌려 온 커다란 맷돌을 마당 한가운데 놓고 콩을 갈았다. 누군가는 허연 콩을 국자로 퍼 담아 그 맷돌에 올리고, 누군가는 맷돌을 돌렸다. 커다란 빨간 다라이에 콩 물이 뚝뚝 떨어지고 그 새를 못 참은 아이들은 부엌에서 그릇을 가지고 나와 퍼먹다 등 짝을 맞았다. 콩이 다 갈아질 때쯤이면 마당 한 쪽에 내온 곤로에서 커다란 냄비에 담겨진 흰 국수가 거품을 내며 끓고 있었다.
콩이 다 갈아지면 모두가 모이는 평상에 큰 상을 펴 놓고 네 집 내 집 식구 할 것 없이 빙 둘러 앉아 콩국에 국수를 말아 먹으며 웃음꽃을 피웠다. 아 그 때의 맛이란, 간식거리 살 게 없어 설탕 물을 만들어 주시던 어머니, 우리에게 그 때의 고소한 콩국은 든든한 영양식이자 최고의 진수성찬이었다. 뜨거운 여름이 오니 콩국수 하나를 나눠 먹으면서도 마냥 행복해하던 마당 넓은 집 이웃들이 무척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