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새벽, 태풍비가 그치고 창문너머 보이는 맑은 하늘에서 숲정이까지 걸쳐있는 무지개를 보면서 아버지께서 어릴 때 저희 남매에게 만들어 주신 김치말이국수를 떠올렸습니다.
50여 년 전의 겨울은 빨리 어둠이 찾아왔고 길었습니다. 이른 저녁을 먹고 따스한 아랫목에서 얘기꽃을 피우고 있던 저희에게 “출출하지 않니? 아버지가 맛있는 밤참 해줄게.” 그러시고는 부엌으로 가시어 다른 식구들 몰래, 조용조용 만들어 오신, 난생처음으로 먹어보는 김치말이국수였습니다.
김치 국물을 채에 걸러서 곱게 내리고 찬물로 희석을 한 후, 살얼음이 뜬 김칫국물에 면과 삶은 달걀과 김치에 박은 무를 채 썰어 참기름, 깨로 양념하여 올린 김치말이국수는 환상이었습니다. 차가운 국수가 입에서 식도로 넘어가 온몸을 얼게 만들지만 동생과 저는 김치말이국수의 매력에 빠져 덜덜 떨면서 이불 뒤집어쓰고 먹었지요. 우리의 모습을 보시면서 흐뭇하고 행복하게 미소 짓던 부모님은 저희가 너무 맛있어서 환호성을 지르면 “쉿, 조용히!”라고 주의를 주셨지요. 다른 식구 몰래 먹던 살얼음이 낀 국물은 새콤하면서도 매콤하고 유달리 시원하고 깔끔하였지요.
고향이 이북이셨던 아버지의 별미국수는 부모님 곁을 떠나서 살 때, 주변 사람들에게 가끔 만들어 주었던 저의 특허품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추운 겨울에 웬 김치냉면이냐.”고 시큰둥하던 사람들이 한 젓가락 먹고서는 큰 그릇에 담긴 김치말이국수를 통째로 서로 끌어안고 먹던 광경은 아직도 웃음이 나온답니다.
잠자리에 누워서도 계속 생각나는 김치말이국수를 전수해 주신 아버지, 오늘은 당신께서 이 세상을 떠나신지 43일째 되는 날이군요. 당신께서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게 계신다는 무지개메신저를 보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돌아오는 당신의 생신날, 제 손으로 만든 정겨운 김치말이국수를 하늘나라에 계신 사랑하는 아버님께 바쳐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