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간장게장
올해로 벌써 엄마가 돌아가신 지 9년이 된다. 1남 5녀의 막내딸인 나에게, 엄마는 어릴 적 남동생과 나에게 말씀하시곤 했다. “내가 너희들을 막내로 태어나게 해서 미안하다”고. 어릴 때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엄마가 돌아가시고 엄마의 빈자리를 느낄 때마다 가슴에 절절하다.
엄마를 산에 묻고 온 날, 엄마가 평소 다니시던 절에서 49재가 시작되는 재가 있었다. 그 재의식을 치르고 난 후 아이러니컬하게도 저녁식사가 그렇게 맛이 있었다. 각종 나물로 이루어진 담백한 사찰 음식맛도 그렇거니와 3일장 치르느랴 변변한 음식을 입에 대지 못한 까닭이었을 게다. 맛있게 한 끼 식사를 한 후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엄마와 함께하지 못한 사실을 깨닫자 엄마의 부재가 그제야 피부에 와 닿았다.
1남 5녀를 키우시고 그 딸린 식구까지 건사하시면서 고작 당신께서는 당신 생일상을 남의 손에 몇 번이나 받으셨을까 딸로서 반성해 본다. 이제 생일이나 엄마가 좋아하시던 소박한 음식을 제 손으로 차려 엄마를 추억하고 싶다. 생일이란 내 생일도 좋고 엄마의 생일이어도 상관없다. 엄마는 간장게장을 좋아하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암으로 6개월 정도 투병하시면서 당시 결혼한 지 1년밖에 안 된 며느리보다는 내가 편했던지 간장게장을 먹고 싶다고 조용히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는 즉시 일명 떠벌이 아저씨로 통하는 동네 생선장수 아저씨께 실한 놈으로 게를 부탁했다. 며칠 후 부탁한 알이 실한 암게를 사다가 깨끗이 손질한 후 쪄냈다. 그 위에 간장을 붓고 통으로 생강과 마늘을 넣은 후 그냥 우르르 끓이기만 해도 훌륭한 간장게장으로 거듭났다. 온갖 항암요법과 방사선치료로 입맛을 잃은 엄마는 이 짭조름한 간장게장으로 다소 밥을 넘기실 수 있었을 게다. 그때 내 나이 마흔, 처음으로 변변하게 내 손으로 해드린 음식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나이 구순에 고관절 수술을 하고 나오시면서 하시는 할머니의 첫 말씀이, “아이고 어머니, 아이고 어머니”였다. 제2의 신이라는 어머니라는 존재, 신이 모든 인간을 돌볼 수 없어 어머니라는 존재를 인간에게 보내주었다고 하잖은가. 나는 아직도, 여전히, 평생토록 엄마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