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나물 잘 무쳐졌어요? (진소영)
집에 오는 길에 길거리에서 고구마줄기를 벗겨 파시는 할머니를 만났다. 저녁밥상에 고구마줄기를 데쳐 된장 양념을 해 내놓았더니, 남편은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난다며 소주가 필요하단다.
18년 전, 94년에 나는 전라도 사람인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서울에서 광주로 내려왔다. 학교 졸업 후 돈 벌러 다니고, 야학 교사 생활을 하는 등, 내가 하고 싶은 일로 바빴던 나는 변변한 음식 하나 만들 줄 모른 채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몇 권의 요리책을 보며 먹을거리 만드는 일에 고군분투했지만 그때는 콩나물 삶는 일, 된장국 끓이는 일 무엇 하나 만만한 게 없었다. 그러던 내가 가장 기본적인 나물 무치는 법부터 배울 수 있었던 것은 시어머니 덕분이다. 주말에 어머니 집에 가면 담양 봄 들판에 지천으로 피어있는 풀들을 뜯어 나물을 무쳐 주셨다. 자운영, 쑥부쟁이 같은 서울에서는 잘 볼 수도, 알 수도 없었던 것들을 뜯어 된장, 고추장 양념에 버무려 주셨고, 호박잎을 쪄서 싸먹는 법도, 왕고들빼기 잎을 먹는 것도 알려주셨다. 한글도 숫자도 모르셨던 시어머니는 서울서 대학 나온 막내며느리에게 평생 몸으로 익힌 된장, 간장, 고추장 양념으로 반찬 만드는 것을 가르쳐 주셨다. 아무 것도 모르던 서울 촌년인 내가 전라도식 음식 만드는 법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은 다 시어머니 덕분이다.
어머니는 베이징 올림픽이 한창이던 4년 전 여름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다. 그리고 결국 병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다음해 봄에 돌아가셨다. 언젠가 내가 요리책을 보고 무친 가지나물을 드시며 ‘나보다 더 맛나게 했시야’ 하던 어머님 모습이 떠오른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잡채, 머릿고기, 어머니에게 배운 고구마줄기 무침, 오이냉국, 그리고 내가 어머니보다 좀 더 맛나게 무칠 수 있는 가지나물, 이렇게 한 상 차려 어머니께 드리고 싶다. 18년 전, 아무 것도 모르고 시집 온 막내며느리의 솜씨가 이제는 좀 나아졌는지 여쭙고도 싶다.
남편은 기어이 소주를 사와 한 잔 먹는다. 고구마줄기는 누구에게 샀는지, 얼마를 줬는지, 고구마줄기는 벗긴 걸 샀는지, 사와서 벗겼는지 별걸 다 묻는다. ‘이제는 어머니가 안 계셔 고구마줄기도 돈 주고 사서 먹는구나’ 탄식하면서 고구마줄기 나물을 소주랑 버무려 가슴으로 넘긴다. ‘고구마줄기 나물 하나를 보면서도 어머니를 생각하는 어머니의 막내아들에게 어머니에게 배운 음식들을 해 주며 살아야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남편이 끝내 한 마디 한다. “고구마줄기 살 때 값 깍지 말고 할머니가 주란대로 다 주고 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