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선물> 집 밥

조회수 11793 추천수 0 2013.03.25 20:28:28

 

                                  <집 밥>

                                                                     김미성

 

 "엄마. 이번 주말에 집에 내려갈 건데 엄마가 해 주실 집밥 먹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힘이 나요." 아들의 전화를 받자마자 가슴이 설레는 나는 우리 아이가 좋아하는 반찬들을 떠올려 본다. 아! 아들이 좋아하는 어리굴젓도 만들어야겠다.  겨우내 묻어 두었던 무를 꺼내서 끝이 날캄하게 닳은 놋수저로 무를 벅벅 긁어 소금으로 얼간한 자연산 굴에 미나리랑 갖은 양념을 넣어 맛나게 버무려 작은 옹기단지에 담아 한나절 쯤 아랫목 이불 속에 푹 파묻어 두었다가 꺼내어 한 이틀 삭힌 어리굴젓을 뜨거운 밥에 슥슥 비벼 먹으면 다른 반찬은 쳐다보지 않고서도 밥 한그릇 뚝딱 바닥나게 하곤 했다.

아이들이 서울로 대학을 가고 또 직장 생활하느라 부모와 떨어져 산지도 벌써 십여 년 되어 간다. 두 아이 모두 밥을 해 먹고 다닐 수 없는 형편이다 보니 일 년에 몇 번 집에 내려오는 날 말고는 매일 식당 밥을 사 먹는다. 끼니는 거르지 않는지, 먹는 음식이 부실하지는 않는지, 아이들이 그리운 것 만큼이나 무얼 먹고 사는지도 큰 걱정이다. 아이들이 전화할 때 "엄마가 해 주시는 우리 집 밥이 제일 먹고 싶어요."라고 말 할 때 마다 엄마의 마음은 안타깝기만 하다.

결혼 초기에는 모든 음식 맛의 기준이 어머님 손맛에 맞춰 있던 남편 때문에 난감할 때가 참 많았다. 남편이 '엄마 손맛'을 외칠 때마다 어머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지으시면서 '엄마 손맛에 길든 아들'에게 '엄마 밥'을 차려 주시곤 했다.

그리고 결혼 34주년이 된 지금, 남편은 ‘아내가 해 주는 밥이 세상에서 최고'라고 외친다. 어느 집이나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물론 함께 살면서 날마다 아내가 해 주는 손맛에 길든 것도 분명한 이유이겠지만 밖에 나가 일류 요리사가 만든 맛있는 음식을 먹고도 집에 들어와서 굳이 아내가 끓여 주는 소박한 된장찌개에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감동하는 이유는 무얼까? 남편은 타인에게 나를 지칭할 때 <집사람>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아마도 내 남편에게 아내는 '집을 지키는 사람'이나 '집에 있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집이 되어 주고 집과 같이 안식을 주는 사람' 으로 믿어지나 보다. 그래서 예전에는 '집사람'이라고 말하는 남편에게 눈을 흘기고 항변도 했지만 요즘 들어서는 '집사람'이라는 드문 호칭에 너그럽게 웃어준다.

사람들은 상처를 받거나 스트레스 상황이 되면 특별한 음식을 찾고 그 음식에서 위로를 받는다고 하는데 많은 음식 가운데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이 엄마나 아내가 해 주는 집 밥이라고 한다. 결국 사람들은 <집>이라는 곳에서 위안을 받고 어머니나 아내가 해 주는 <밥>을 먹으며 위로를 받는 것이라고 이해해도 크게 틀린 것은 아니라고 본다.

아이들은 엄마가 해 주는 집 밥을 그리워하고 남편은 아내가 해 주는 집 밥에 환호한다. 그것은 자녀가 엄마의 손길을 그리워하고 엄마의 품에서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남편은 아내의 사랑과 정성에 배부르고 아내의 눈길에서 위로를 받는다는 것일 터이다. 그래서 아이들의 엄마이고 남편의 아내인 나는 가슴 뻐근해지는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앞치마를 두른다. 경쟁에서 뒤처지지 말아야만 한다고 우겨대는 세상에서 이리저리 깨지기도 하고 멍들기도 하고 상처받은 영혼들이 그래도 위로 받고 치유 받고 안식을 찾을 수 있는 집. 엄마가 있고 아내가 있는 집. 그 집에서 나는 오늘도 사랑하는 내 가족을 위해 집 밥을 짓는다. 이번 주말 아이들과 함께 맞이하는 밥상은 어느 때보다 나의 정성과 사랑이 더욱 듬뿍 깃들어져 있을 것이다.      (HP 017-611-7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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