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머리국밥의 마술···속이 든든! 힘이 팡팡!

끼니 2018.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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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지암 일대 대표 먹거리 소머리국밥
'최미자' '골목집' '구일가든' 3총사 
골프장 개장, 곤지암 나들목 개통 등 한몫 
음식평론가 박정배 "서민 보양식으로 으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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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집소머리국밥’. 박미향 기자

제주는 고기국수, 포항은 과메기와 물회, 나주는 곰탕. 지역마다 자랑하는 음식이 한 가지씩 있기 마련이다.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 일대도 예외는 아니다. 전국구로 내세우는 음식은 뜨끈한 소머리국밥이다. 1995년 한 일간지 기사를 살펴보면, 한 시간 이상 줄 설 각오로 찾아오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고 한다. 곰탕도 아니고 설렁탕도 아닌 소머리국밥이 왜 이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이 되었을까? <음식강산> <한식의 탄생> 등의 저자인 박정배 음식평론가와 궁금증을 해결하고자 지난 18일 다녀왔다. 최근 이 지역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부쩍 커지고 있다. ‘정신병원 괴담’이란 독특한 소재로 개봉 전부터 ‘실시간검색어’에 오르는 영화 <곤지암> 때문이다.


“볼살도 있고, 껍데기 안쪽에 붙은 고기도 있는데 소 혀가 없네요.” 첫번째로 찾은 ‘소머리국밥 최미자 1관’에서 박 평론가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국밥 몇 숟가락을 떠먹고 말문을 열었다. 점심이 한참 지난 오후 3시인데도 식당 안은 손님들로 만석이었다. 국물에 말아 나오는 밥에 대해 그는 “온도가 높은 편”이라며 “식힌 후 말아야 고기 국물 특유의 맛이 쫙 배어 맛이 좋다”고 말했다. 국밥엔 시래기도 배춧잎도 없었다. 채소라곤 국물 위에 띄운 파뿐이다.

곤지암 소머리국밥 탄생엔 최미자(77)씨가 있다. 동네 주민도 음식 연구가도 이견이 없다. 소머리국밥이 곤지암에 뿌리내리는 데 큰일을 해낸 최미자씨를 찾았으나 만날 수가 없었다. ‘소머리국밥 최미자 1관’을 운영하는 최씨의 둘째 딸 강국희(50)씨는 “어머니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집에 계시다”는 소식을 전했다.

‘소머리국밥 최미자 1관’. 박미향 기자
‘소머리국밥 최미자 1관’. 박미향 기자

최미자씨는 1980년대 초 지금의 ‘골목집소머리국밥’ 자리 인근에서 탁자 몇개를 놓고 연탄불에 팔팔 끊인 소머리국밥을 팔았다. 식당이라고 할 것도 없는 작고 초라한 밥집이었다. 하지만 맛만은 달랐다. 강씨는 “당시 골프장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하면서 어머니 국밥이 소문이 났다”고 한다. 황량한 거리에 갈 만한 식당이라고는 최씨의 국밥집이 거의 유일하다시피 했다. 1987년 곤지암나들목(곤지암읍 삼리) 개통도 한몫했다. 고속도로 이용객들의 끼니를 최씨가 책임지는 꼴이 됐다. 박 평론가는 “88올림픽도 곤지암 소머리국밥 탄생의 배경”이라며 “당시 (혐오스러운 모양의) 소머리 같은 부산물로 만드는 음식은 서울 시내에서 몰아내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장사가 잘되니 골목엔 소머리국밥집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마냥 승승장구할 것 같았던 최씨는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고 1997년 지금 1관 자리에 재개업을 했다. 2001년엔 그의 막내아들이 소머리국밥집을 인근에 열었다. 늦게 얻은 아들이 안쓰러웠던 최씨는 ‘본관’이란 이름을 달아주고 주로 그곳에 있었다. 그러다 보니 ‘본관’이 더 유명해졌다. 요즘도 주말 오후 6시면 재료가 떨어져 문을 닫을 정도다. 현재 ‘본관’은 큰딸 강숙희(52)씨와 막내아들(40)이 운영한다.

‘1관’을 나서면서 강국희씨에게 국밥에 왜 우설이 없느냐고 물었다. “수육이나 ‘소머리국밥 특’엔 있다”고 한다. 사골로 육수를 낸 후 서울 마장동 축산물시장 등에서 발골된 채 오는 소머리 살코기를 마저 넣어 끓여낸다고 한다. 광주시 곤지암읍 광여로엔 ‘곤지암 도축장직판장’이 있다. 굳이 서울의 마장동, 지방의 여러 곳에서 소머리를 받는 이유도 물었다. 그는 “하루 1000여명이 오기 때문에 약 30마리 정도의 소머리가 필요하다”며 “물량 확보 차원인 동시에 오랫동안 거래한 곳이 있다”고 했다.

’골목집소머리국밥’의 수육. 박미향 기자
’골목집소머리국밥’의 수육. 박미향 기자

’구일가든’. 박미향 기자
’구일가든’. 박미향 기자

이어 찾은 ‘골목집소머리국밥’도 끓여내는 방식은 같으나 밥이 따로 나왔다. 수육은 부들부들 야들야들하면서도 고기 특유의 질감이 살아 있었다. 소(小)자가 3만원. 박 평론가는 “중장년이 좋아하는 맛”이라며 “먹는 순간 고기가 주는 위안과 좋은 음식이 주는 기쁨이 동시에 느껴진다”고 했다. “두툼한 수육은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덧붙였다. 수육은 코 주변 살코기, 우설, 볼살 등이 섞여 있었다. 우설은 감히 3대 진미라는 푸아그라(거위 간)를 떠올리게 했다. 등급이 낮은 푸아그라 맛이 났다.

국밥은 어떨까? ‘1관’보단 맑았다. 국물 역시 칭찬해줄 만하다고 박 평론가는 말했다. 처음엔 심심한 국물 맛을 그대로 느껴보고, 그다음엔 고춧가루 양념을 푼 후 소금을 살짝 뿌려 간을 맞춰 먹는, 두 가지 방식으로 먹으면 좋다. 한 가지 음식으로 두 가지 세상을 경험할 수 있다.

지금 이 식당은 박영자(67)씨와 그의 아들 정태근(39)씨가 운영한다. 토박이 주민 김평수(63)씨는 “‘최미자’, 여기, 구일가든이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장사한다”며 자신은 이곳 ‘골목집’이 단골이라고 한다.

구일가든은 경강선 개통(2016년)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식당이다. 경강선 곤지암역에서 걸어서 2~3분 거리에 있다. 국물은 뽀얗고 숭숭 썬 파가 잔뜩 올라가 있다.

이 일대엔 ‘배연정 소머리국밥’(2곳), 사랑방, 동서소머리국밥집 등이 더 있다. 문득 ‘배연정 소머리국밥’이 궁금해졌다. 식당엔 코미디언 배연정씨 사진이 도배돼 있었다. 전라도, 경상도 등 지방에도 같은 이름의 국밥집이 있다. 배씨는 여기가 고향일까? 배연정씨는 전화 인터뷰에서 “여행을 다니면서 이 동네 들렀다가 맛보고 마음에 들어 식당을 내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는 아이엠에프 외환위기 때 야간업소 출연도 줄고 방송 활동도 뜸해지면서 국밥집으로 눈을 돌렸다. “지방의 같은 이름의 식당들은 나와 상관없다. 한때 가맹점을 많이 내줬으나 관리도 잘 안되고 여러 사정이 생겨 다 정리했다. 일일이 간판을 내리라고 하기 쉽지 않아서 그냥 두고 있다”며 “지금은 곤지암 지역에 있는 곳만 관련 있다”고 한다. 이젠 주로 홈쇼핑 판매에 주력한다고 한다.

한국인들은 소머리를 언제부터 먹었을까? 조선시대엔 농사 때문에 소 도축을 금하기도 했으나 왕실의 제사 등에선 소고기가 쓰이기도 했다. ‘조선인들은 말고기를 먹지 않고 소고기를 아주 좋아한다’는 구절이 <조선잡기>(1893년)에 있는 걸 보면 구한말엔 소고기가 일반에도 유통된 듯하다. 더구나 <조선만화>(1908년)엔 소머리를 진열해둔 국밥집 그림도 나온다. ‘국물을 내는 소의 머리’란 글귀도 있다. 박 평론가는 “1950~60년대 우시장이 있었던 영천공설시장의 ‘포항할매국밥’의 간판 메뉴도 소머리곰탕이었다”며 “소머리국밥은 서민들을 어루만져준 보양식”이라고 말했다.

곤지암/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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