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준의 일본음식이야기] 도쿄의 붕어빵 <상>
서민 호주머니 맞추되 모양은 도미로 눈맛 최고급
서양식-전통 절묘한 조화…길게는 2시간 기다려야
▲나니와야의 가장 인기있는 메뉴 '타이야키 세트'
고급 녹차와 갓 구워낸 타이야끼가 함께 나온다. 가격은 600엔 (한화 약 8천100원.
타이야끼는 추가 주문 가능. 가격은 200엔 (한화 약 2천700원)
찬바람이 부는 계절이면 어김없이 서민들에게 사랑받아 온 우리의 대표적인 길거리 음식 붕어빵. 이 붕어빵은 실은 일본의 타이야끼에서 유래되었다.
도미를 닮아서 타이야끼 (타이-도미, 야끼-굽다 뜻)라고 이름 지어진 이 음식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2년 전인 1909년 오사카 출신의 칸베라고 하는 이가 도쿄에서 처음으로 만들어 팔기 시작한 음식이다. 1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일본의 대표 간식이다. 달콤한 팥 앙금을 도미 모양의 틀 속에 밀가루 반죽과 함께 넣어 구워 만드는 타이야끼는 102년 전 당시의 급변하던 일본의 시대상을 반영한 음식이다.
바삭바삭한 식감과 달콤한 맛 동시에 느끼게
당시 오사카에서 상경해 창업을 구상하고 있던 칸베는 메이지 유신과 근대화를 거치면서 새로운 소비계층으로 급부상하기 시작한 당시 일본의 서민 계층을 주목했다. 그들의 먹을거리에 대한 새로운 수요에 관심을 가졌다. 당시 도쿄에서 인기 있던 간식은 화려한 색과 장식으로 유명한 전통 화과자와, 서양문물과 함께 일본에 소개되기 시작한 서양의 쿠키, 케이크 등을 총칭하는 양과자였다.
하지만 당시 화과자와 양과자 모두 주머니가 가벼운 서민들이 선뜻 사먹기에는 모두 고가의 먹을거리였다. 칸베는 일반 서민들이 쉽게 사 먹을 수 있는 간식거리를 창업 아이템으로 정했다. 그는 쇠로 만든 틀 속에 서양의 핫케이크 반죽 같은 묽은 밀가루 반죽에 일본인들이 전통적으로 선호하는 달짝지근한 팥 앙금을 넣고 불에 바짝 구웠다. 양과자 같은 바삭바삭한 식감과 전통 화과자의 달콤한 팥의 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음식이 만들어졌다.
마지막으로 과자의 모양을 고심하던 칸베는 일본에서 가장 최고급 생선으로 꼽히는 도미를 골랐다.
▲도미 모양을 하고 있는 일본의 타이야끼.
한국의 붕어빵과는 달리 꼬리가 위로 말아 올라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 이유는 돈 없는 서민들이 마치 부자가 된 것처럼 도미를 마음껏 즐기는 기분을 느끼게 하려는 의도였다. 여기에 자신의 고향인 나니와의 이름을 따서 나이와야(야는 집, 가게라는 뜻)를 열게 되니, 이것이 바로 100여 년 전통의 타이야끼의 탄생의 일화이다.
▲나니와야는 바삭한 맛을 내기 위해 한 개의 쇠 틀 속에
하나 하나씩 구워 내는 옛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시원한 빙수 곁들이면 한겨울에 먹어도 찰떡 궁합
칸베의 타이야끼는 100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자손들에 의해서 원조 타이야끼로서 명성을 지키고 있다. 현재 4대손이 운영하고 있는 나니와야는 서울의 청담동처럼 시크한 맛집들이 모여있는 아자부주반에 위치해 있다.
▲휴일에 나니와야를 찾은 일본인들. 한때 150여개의 체인을 전국에 거느리기도 했던
나니와야. 본점에는 총본점(総本店)이라는 간판이 자랑스럽게 붙어 있다
50여 년 전 현재의 위치로 자리를 옮긴 나니와야는 오래된 구식 목조 건물로 1층에는 100년 전 칸베가 만든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이곳에는 4명의 직인 (장인을 일컫는 일본어)들이 쉴 새 없이 타이야끼를 굽고 있다. 철컥철컥, 타이야끼 구이틀을 뒤집는 소리가 경쾌하고 리드미컬하게 귓가에서 울려 퍼진다. 1층에서 타이야끼를 사기 위해서는 짧게는 30분에서 길게는 2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혼잡을 피하기 위해 최근에는 전화 예약도 받고 있다.
한 개에 150엔 (한화 약 2천원)하는 타이야끼를 한번에 10개~20개씩 사가는 손님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고객들의 수요를 빠르게 맞출 수가 없었다.
▲나니와야에서는 타이야끼를 굽는 직인 (職人)들이 요리사 모자를 쓰고 일하는 것이 특징.
나니와야의 3대손부터 시작된 전통. 손님들에게 예의를 갖추어 맞는다는 의미.
따라서 좀 더 여유롭고 편안하게 타이야끼의 맛을 느끼고 싶은 고객들을 위해서 나니와야에서는 같은 건물의 2층에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이 카페에서는 타이야끼를 비롯하여 팥빙수, 야끼소바 (일본식 볶음국수)등을 녹차, 홍차 등과 함께 즐길 수 있다.
타이야끼 1개와 녹차, 커피, 홍차 등 음료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타이야끼 세트가 가장 인기다. 가격은 600엔 (한화 8천100원 ). 여기에 한 개에 200엔 (한화 2천700원) 하는 타이야끼를 추가 주문할 수 있다.
2층 카페의 또 다른 인기 메뉴는 나니와야 롤 세트. 부드러운 스폰지 케이크와 달콤한 생크림의 맛이 어우러진 서양의 롤 케이크에 나니와의 자랑인 팥앙금을 얹어 먹는 나니와야의 롤 케이크는 일본의 여러 언론 매체에도 소개되었다. 인기 있는 일본식 퓨전 디저트이다.
▲일본의 맛과 서양의 맛이 잘 어우러진 나니와의 롤케익세트. 가격은 800엔 (한화 약 1만원)
그밖에 사시사철 주문해서 먹을 수 있는 빙수도 나니와야 카페의 대표메뉴.
갓 구운 따뜻한 타이야끼와 나니와야의 시원한 빙수는 한겨울에 먹어도 궁합이 잘 맞는다.
▲딸기 시럽이 얹어진 나니와야의 딸기 빙수. 신선하고 깨끗한 물을 얼려 만든
얼음을 사용하여 뒷 맛이 깔끔한 것이 특징. 가격은 400엔 (한화 약 5천400원)
껍질 최대한 얇게 해서 그 안 팥 앙금 살짝 보이게
나니와야의 카페는 휴일에도 긴 시간 차례를 기다려야 겨우 앉을 수가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탄생 이후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전국에 수 천여 개의 타이야끼 가게가 있지만 여전히 나니와야의 타이야끼가 일본인들에게 변함 없이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원조집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개업 당시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는 나니와의 타이야끼는 일본인들에게 100년 전의 맛을 그대로 전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신선한 북해도산 팥을 매일 밤 커다란 가마솥에 넣어 8시간 동안 푹 끓여 팥 앙금을 만든다. 아직도 믹서기 등 기계는 일체 쓰지 않는다. 반죽과 팥 앙금을 모두 손으로 만드는 나니와야에는 아직 100년 전의 손맛이 살아 있다.
반죽을 두껍게 해서 빵처럼 부드러운 맛을 내는 다른 타이야끼 가게의 현대풍 타이야끼와는 달리 나니와의 타이야끼는 껍질을 최대한 얇게 해서 그 안의 팥 앙금이 살짝 보이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 타이야끼는 껍질을 먹는 것이 아니고 앙금을 맛보는 음식이다. 껍질은 팥 앙금의 맛을 전달해주는 조연일 뿐이라는 게 나니와야의 지론이다.
껍질이 두꺼운 타이야끼는 원가가 비싼 팥앙금을 절약하기 위한 것이라며 고집스럽게 옛 방식을 지켜나가고 있다.
▲8시간 커다란 가마솥에 넣어 푹 고아 만든 달콤한 팥 앙금과 속이
보일 정도로 얇고 바삭한 타이야끼의 껍질.
기다림과 결코 싸지 않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나니와야가 100년 동안 일본인들에게서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러한 옛 맛을 지켜나가는 후손들의 우직스러움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浪速家総本店:東京都港区麻布十番1-8-14/03-3583-4975)
글·사진 세이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