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대 앞 양꼬치집 골목에 손님 불났네~

박미향 2012.04.16
조회수 29133 추천수 0


연남동, 가리봉동 이어 양꼬치골목 부상한 건대 앞거리…갈빗살에 쯔란 양념 일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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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이하 램 부드러운 맛

1년 이상 된 머튼 저렴

갈빗살이 맛있어


겨울의 찌꺼기 같은 꽃샘바람을 애써 밀어내고 골목에 들어서자 얼떨떨한 향을 만난다. 외계인이 머리채를 휙 낚아챈 것처럼 멍해진다. 거리로 쑥 빠져들기 전까지 이곳은 서울의 여느 동네와 다르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온몸을 푹 담글수록, 길은 별난 맛의 세상으로 이끄는 활주로로 변했다. 


지하철 2, 7호선 건대입구역 5번 출구에서 한강 뚝섬유원지 방향으로 약 200m까지 걸어가서 오른쪽으로 꺾어 들면 동서로 쭉 뻗은 약 600m의 거리가 나타난다. 일명 ‘건대 양꼬치골목’이다. 이곳은 서울이지만 서울이 아니다. 지나는 이들이 던지는 중국어가 예사로 들린다. 복잡하게 얽힌 전신줄 아래로 매콤하고 낯선 냄새가 피어오른다. 양고기 굽는 냄새다. 


도톰하게 잘린 양고기가 뾰쪽한 쇠젓가락에 꽂혀 오만가지 향을 피운다. 이 양꼬치 덕에 허름한 중국 골목에 온 듯한 착각을 한다. 25곳이 넘는 양꼬치전문점의 주인들은 대부분 조선족이거나 중국인들이다. 최근에 들어서야 한국인이 운영하는 집이 한두 곳 생겼다. 


중국어로 양러우촨(羊肉串)인 양꼬치는 우리에게는 낯선 음식이다. <음식디미방>, <시의전서>, <규합총서> 등 우리 고문서를 뒤져도 개고기 조리법은 있을지언정 양고기 요리법은 찾아보기 힘들다. 


양꼬치 하면 예전에는 중국 동포들이 많이 모여 살던 가리봉동이나 화교들의 동네 연남동 등에서 맛볼 수 있었다. 행정구역상 광진구 자양4동인 이곳이 양꼬치 골목으로 각광을 받게 된 것은 약 5년 전부터다.


2001년 이곳에 처음 양꼬치집을 연 ‘경성양꼬치’의 주인, 이학범(48)씨는 “그때는 철물점이나 있고 식당도 별로 없던” 거리였다고 회상한다. 이씨는 중국 헤이룽장성(흑룡강성)이 고향이다. 그는 “중국 동포들이 (이곳에) 많이 살아서” 양꼬치집을 시작했다. 


자양동은 과거 성수동 공단에서 일하는 조선족 노동자들이 싼 월세를 찾아 모여든 곳이다. 주변의 건국대, 한양대에 유학 온 중국인 학생들도 이곳에 터를 잡았었다. 주민들은 “교통이 편해서 강남으로 일 나가는 조선족”들도 많이 살았다고 전한다. 


‘경성양꼬치’가 장사가 잘되자 ‘원조연변양꼬치전문점’, ‘송화양꼬치전문점’ 등이 잇따라 생겼다. 1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집들이다. “과거에는 고향의 향수를 달래려는 조선족이나 중국인이 많이 왔지만 요즘은 한국인도 많이 옵니다. 우리 집 손님은 90%가 한국인이죠.” 이씨의 말이다. ‘원조연변양꼬치전문점’도 비슷하다. 주인 박금화(43)씨는 “단골은 모두 한국인이죠. 동포는 별로 없어요”라고 말한다. 직장인들이나 별미를 맛보려는 미식가들이 찾는 맛 골목이 되었다.


양꼬치는 중국의 대표적인 길거리 음식이다. 중국 서북부 신장지역에 사는 위구르족이 만들어 먹던 음식이다.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위구르족이 중국 각지로 퍼져 살면서 양꼬치도 따라 퍼졌다.


“우리 집은 갈빗살을 양념에 재워서 내죠. 고향에서 했던 그대로 해요.” 고향 연변에서도 양꼬치집을 운영했던 박씨가 웃으면서 ‘재운다는 점’을 강조한다. 양꼬치는 집집마다 만드는 방법이 조금씩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2가지다. 꼬치에 꿰기 전에 양념에 재우는 방법과 꼬치에 끼운 뒤에 양념을 뿌리는 방식이다. 독특한 양념을 듬뿍 바른 양꼬치는 뜨거운 숯불에 굽는다. 


양념은 향신료의 일종인 쯔란(孜然, 커민), 고춧가루, 소금, 깨 등 다양한 것들로 만든다. 쯔란은 어느 집이나 사용하는 공통분모다. 하지만 그 외에 들어가는 양념은 집집마다 다르다. 주인장들이 한결같이 “비방(비밀방법)이라 안 된”다고 입을 닫는다. “사람마다 달라요. 콩가루 넣는 사람도 있어요.” 강남이나 영등포 등 다른 지역에서는 고춧가루 대신 고추장을 붓거나 라면수프를 넣는 식으로 변화를 추구하는 양꼬치전문점도 있다. 


재워 낸 뒤 꼬치에 꿴 양꼬치는 양념 맛이 조금 더 강하다. “우리 연변에서는 다 재워서 내죠.” 


생고기꼬치와 양념이 따로 나오는 집들도 있다. 이학범씨는 “한국 사람들이 삼겹살 좋아하잖아요. 강한 양념을 싫어하는 이도 있어”서 등장한 것으로 추측한다. 


00427240401_20120412.jpg » ‘건대 양꼬치골목’의 초입00427257601_20120412.jpg » ‘원조연변양꼬치전문점’의 양갈비살 


10개 1만원 정도

중국 동포 유학생에서

직장인들까지 별미로 인기


양꼬치의 매력은 소고기나 돼지고기와는 다른 독특한 풍미와 육질, 쯔란에 있다. 우리나라에 주로 수입되는 양고기는 오스트레일리아산과 뉴질랜드산이다. 양고기는 1년 이하의 어린양인 램과 1년 이상 된 머튼 2가지다. 머튼은 램보다 질기고 양 특유의 냄새도 강하고 가격도 더 싸다. 서울 시내 특급호텔은 주로 오스트레일리아산 램을 쓴다.


양은 식용으로 쓸 수 있는 부위가 적다. 다른 육류처럼 족발이나 머리고기, 뼈, 꼬리를 조리하지 않는다. 등심, 안심, 갈빗살, 넓적다리살과 새김하고 난 뒤 남은 잡육 정도가 식용으로 사용된다. 대부분의 양꼬치집은 갈빗살과 잡육을 사용한다. 박금화씨는 “갈빗살이 더 맛이 좋고 질이 좋은 고기”라고 알려준다.


쯔란은 양꼬치 맛의 시작이자 끝이다. 제아무리 고기 맛이 특출 나도 이 매력적인 향신료가 없었다면 지금 같은 인기는 없다. 쯔란은 미나리과에 속하는 식물인 커민의 씨로 만든 향신료이다. 클레오파트라의 나풀거리는 치맛자락이나 ‘나쁜 남자’의 쿨한 눈빛처럼 매력이 넘치는 조미료다. 이 거리의 양꼬치는 10개당 약 9000원~1만원 한다.


환전소, ‘각종 서류 대행’이라 적힌 간판, 중국 식재료만 파는 슈퍼도 눈요깃감이다. 건대 양꼬치골목 탓인지 알 수 없지만, 농림수산식품부 자료를 보면 2010년 447건(4196톤)이었던 국내 양고기 수입이 2011년에는 504건(5150톤)으로 늘었다.



 


cooking tip   | | | | | | | | | | | | | | | | | |

다른 곳의 양꼬치 맛집


자양동 양꼬치 골목만 성업중은 아니다. 최근 들어 홍대 앞에도 양꼬치집들이 생겨나고 있다. ‘소고산제일루’(서울 마포구 서교동 366-13)는 2008년 문을 연 집이다. 하얼빈이 고향인 중국인 쉬쉰씨가 주인. 양꼬치(10개당 9000원)는 중국 냄새가 물씬 풍긴다. 양념에 재운 뒤 꼬치에 꿴 양고기가 나온다. 쇠고기 힘줄, 염통 등의 다른 꼬치구이 요리도 눈길을 끈다.


동대문 인근 창신동에 있는 ‘동북화과왕’(서울 종로구 창신동 463-1)은 중국요리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익히 알려진 곳이다. 양꼬치구이(10개당 1만원), 양갈비살꼬치(10개당 1만2000원) 등, 10가지 넘는 꼬치구이가 있다.


연남동에 자리잡은 ‘서대문양꼬치’(서울 마포구 연남동 258-1)는 양갈비살꼬치(10개당 1만2000원), 양등심꼬치(10개당 1만원) 2가지가 있다. 헤이룽장성(흑룡강성)이 고향인 조선족 이순광씨가 운영한다. 양꼬치 마니아들이 자주 찾는 전문점이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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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 기자
한겨레신문에서 음식문화에 관한 다양한 기사를 쓰고 있다. 2000년에 직장인들의 야식을 주제로 한 연재물 '밤참'을 시작으로 먹을거리와 인연을 맺었다. <그곳에 가면 취하고 싶다>, <인생이 있는 식탁> 등 4권의 음식 관련 책을 냈다. MBC <여성시대> 등에 출연해 맛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타고난 체력과 품 넓은 열정을 재산 삼아 맛과 이미지의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문화 정착에 자신의 일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행복의 시작은 밥상이 출발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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