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 대신 버섯으로 울끈불끈

박미향 2012.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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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향진 요리연구가의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여름철 보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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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유명한 레스토랑에서는 미슐랭 별점이 신기한 일도 아니다. ‘좀 맛나게 한다’는 소리를 듣는

레스토랑치고 미슐랭 별 한두 개 없는 곳이 없다. 일본은 식문화가 발달한 나라다. 산과 바다, 들에서

나는 여러 가지 식재료는 좋은 원천이 되었다. 쇠고기도 그중 하나다. 하지만 일본인들이 쇠고기를

먹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675년 덴무 일왕이 ‘살생과 육식을 금지하는 칙서’를 발표한

 이후 1200년간 일본인들은 고기를 먹지 않았다. 불교의 영향이다. 1872년 메이지 일왕이 육식을

해금한 이후 고기 음식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서구인들과 교류가 빈번해지며 체형의 차이에서 오는

열등감을 식습관으로 해결하려 한 것이었다.
육식금지령이 발포된 뒤로 일본인들은 전혀 고기를 먹지 않았을까? 에도 시대에는 은밀하게 멧돼지나

 사슴 등을 먹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몸보신을 위해서였다. 기력을 회복하는 데 고기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보양식으로 가장 많이 찾는 것이 육류다. 여름철에 특히 인기다.

이름난 삼계탕 집은 30분 넘게 기다려야 겨우 한자리를 차지할 정도이고 일부에서 혐오 음식으로

취급하는 개고기도 찾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더운 여름날 뜨끈한 고기 음식이라니? 이유는 다양하다.

 더운 여름철 찬 것을 많이 먹다 보면 속도 따라 차갑게 된다. 찬 기운을 따끈한 음식으로 다스리려는

것이다. 뜨거운 음식을 먹다 보면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다. 체내의 열이 땀으로 배출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채식주의자나 고기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이들이 문제다. 더운 여름날 허해진 몸을

보양하고 기력을 회복할 방법은 없을까?
 
여름 기력 회복하는 데 고기밖에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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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요리연구가 장향진(디저트 떡카페 ‘다미재’ 운영)씨가 고기 없는 보양식을 추천했다. “육류를

섭취할 기회가 적었던 예전에는 고기가 더위에 지친 몸을 보양하는 데 적합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육류를 섭취하는 지금은 오히려 영양과잉입니다.” 여름보양식은 동물성 단백질이나 지방을 피하고

무기질, 비타민, 사포닌 등의 영양소가 충분한 것이 좋다고 한다.
그가 준비한 여름보양식은 ‘산느타리삼합’, ‘황금송이온반’, ‘산채초밥’이다. 산느타리삼합은 씹는

질감이 다른 3가지가 만나 담백한 풍미를 자랑한다. 주인공은 산느타리버섯과 마, 백김치다. 쪽쪽

찢은 느타리버섯은 매우 부드럽지만 속 내용은 단단한 녀석이다. 항암·항균작용을 하고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위는 여름철 보양을 위해 이것저것 먹다 보면 산타 할아버지가 내려가기

버거울 만큼 꽉 막힌 굴뚝이 된다. 마는 위를 펑 뚫어 주는 효과가 있다. 백김치는 두말할 것 없이

건강발효음식이다.
황금송이온반은 장씨가 검은비늘버섯을 이용해 개발한 요리다. 모양은 얼큰한 육개장과 같지만

한 숟가락 뜨는 순간 맑은 맛이 스며든다. 검은비늘버섯은 대형마트 등에서 ‘맛송이’, ‘황금송이’,

‘황금맛송이’라는 이름으로 유통되고 있다. “황금맛송이버섯은 소화를 촉진하고 피를 맑게 하고

변비에 효과가 있어요.” 황금송이온반에는 숙주도 들어간다. 숙주는 해열·해독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여름철 몸에 들러붙는 열을 식혀준다. 눅진한 육수와 무거운 고기가 빠진 육개장은

마시기 편한 와인의 바디감을 ‘라이트(light)하다’고 표현하는 것처럼 가볍다. 장씨는 강원도 화천군

멋둔마을 작목반에서 재배하는 검은비늘버섯을 재료로 사용한다. “화천은 비무장지대에 가깝잖아요.

공단도 없고, 청정지역이죠.”

면역 돕는 버섯에 지친 심신 달래는 재료 버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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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채초밥은 은근한 색들의 잔치다. 10가지 재료들이 소담하게 뭉쳐진 밥 위에 앉아 있다. 초밥이라고

해서 흔한 일본식 초밥을 생각하면 안 된다. 식초와 밥이 한 덩어리가 되는 ‘샤리’(초밥의 밥)가

아니다. 장씨가 만든 산채초밥의 밥은 찹쌀, 기장, 햅쌀 등이 어우러진 밥이다. 장씨만의 기술로

떡처럼 뭉치지도, 베트남 쌀 요리처럼 밥알들이 흩어지지도 않는, 적당한 뭉침과 독립성이 존재하는

밥덩어리다. 밥알들은 최상의 밥맛을 유지하기 위해 서로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관계를

유지한다. 당귀, 더덕, 노루궁뎅이버섯, 가죽나물, 도라지 등이 올라간다. 식욕을 돋운다.

특히 노루궁뎅이버섯은 당뇨 예방에 효과가 있고, 그 밖의 재료들도 칼슘, 인, 마그네슘 등이

풍부해서 더위로 지친 심신을 달래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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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채초밥의 탄생 배경은 재미있다. 장씨는 차 전문가인 남편 조성희씨를 쫓아 각지의 차밭을

뒤지다가 산채의 매력에 빠졌다. 아들 용준씨도 산채 요리에 폭 빠지기는 마찬가지. 그는 전공을

바꿔 대학원에서 산림자원학을 전공하고, 2009년 장씨와 함께 만든 산채초밥을 전국임업후계자대회 산채요리경연대회에 강원도 대표로 출품해 1등을 했다.
장씨의 여름철 보양식에는 산느타리버섯, 검은비늘버섯, 노루궁뎅이버섯 등 3가지 버섯이 들어간다.

“버섯을 이용한 음식은 각종 질환에 시달리기 쉬운 여름철, 소화를 돕고 면역력을 강화해주는 보양식으로 훌륭합니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요리 장향진·참고 도서 <돈가스의 탄생>


<황금송이온반>(2인분)
⊙ 재료 | 말린 황금송이버섯(검은비늘버섯) 40g, 육수 4컵(표고버섯 밑동 20개, 다시마 10×10cm 1개, 파뿌리 2개, 사과 ½개, 물 6컵을 넣고 20분간 끓인 것), 숙주 300g, 참나물 100g, 파 100g, 마늘 1T, 소금 1T, 진간장 1T, 달걀 2개, 고춧가루 1½T, 포도씨유 1T, 고명(데친 노루궁뎅이 버섯)
⊙ 만드는 법 | 1. 황금송이버섯은 3시간 물에 불리고 씻는다. 2. 숙주는 데치고 참나물과 파는 5cm로 잘라 데친다. 3. 포도씨유에 고춧가루를 넣어 고추기름을 만든 후 끓는 육수를 붓는다. 4. 끓으면 재료를 넣어 더 끓인다. 5. 마늘, 소금, 간장 넣고 끓인 후 마지막에 달걀을 넣어 마무리한다.

<산느타리삼합>(2인분)
⊙ 재료 | 마 200g, 산느타리버섯 200g, 백김치 줄기 200g, 미나리줄기 10개, 백년초 가루 약간, 참기름 약간, 소금 4g, 포도씨유 2T, 물 2T
⊙ 만드는 법 | 1. 마는 껍질을 벗기고 3×5×1cm 두께로 썬 뒤 물에 헹궈 녹말을 씻어낸다. 2. 찜통에 1분간 찐다. 3. 소금 2g과 백년초 가루 갠 것, 물, 참기름을 넣고 마를 조린다. 4. 산느타리버섯은 한입 크기로 찢어, 포도씨유를 두른 팬에 굽다가 소금 2g을 뿌려준다. 5. 미나리줄기는 소금물에 데친다. 6. 백김치, 마, 산느타리버섯 차례로 올린 다음 미나리줄기로 묶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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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 기자
한겨레신문에서 음식문화에 관한 다양한 기사를 쓰고 있다. 2000년에 직장인들의 야식을 주제로 한 연재물 '밤참'을 시작으로 먹을거리와 인연을 맺었다. <그곳에 가면 취하고 싶다>, <인생이 있는 식탁> 등 4권의 음식 관련 책을 냈다. MBC <여성시대> 등에 출연해 맛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타고난 체력과 품 넓은 열정을 재산 삼아 맛과 이미지의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문화 정착에 자신의 일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행복의 시작은 밥상이 출발이라고 믿는다.
이메일 : mh@hani.co.kr       트위터 : psols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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