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맛의 본류 - 김치 익어가는 세가지 빛깔

박미향 2012.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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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철든 재료의 절묘한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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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좋아 맛도 좋은 김치 가풍 > 한살림 회원 손순향(54)씨는 건강김치 만들기의 달인이다. 번잡한 서울 한복판 아파트에서 무려 21년간 겨울바람이 불면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동네 주민들을 다독거려 김치를 담가왔다. 손맛 좋기로 소문난 시어머니의 솜씨도 고스란히 배웠다.
그의 비법 중 하나는 ‘제철 식재료’를 100% 활용하는 것이다. “무도 배추도 제철일 때 단맛이 나죠.” 이뿐만 아니라 김치 양념도 제철인지 따진다. 꽃피는 4, 5월이면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향한다. 그러곤 제철 맞은 부산 기장멸치 한 상자(15㎏)를 떡하니 싸들고 돌아와 천일염을 송송 뿌려 ‘손순향표’ 멸치젓을 만든다. 이 멸치젓은 3년은 묵어야 비로소 배추를 만날 수 있다. 매년 건더기를 건져 버리다 보면 찰랑거리는 까만색의 맛깔스러운 멸치젓이 탄생한다. 소금 대신 이 멸치젓을 쓴다. “쓴맛 때문에 소금을 안 넣고 젓갈을 써요.” 건강김치 비법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설탕을 전혀 넣지 않는다. 그럼 단맛은? 단맛 내는 일등공신은 양파다. 배추 한 포기당 양파 한 개씩을 갈아 넣는다. 자연이 선사한 달콤한 맛이 하얀 배추를 만나 우아한 날개를 단다. 공장에서 찍혀 나오는 플라스틱 같은 단맛과는 완전히 다르다.
김치 식재료의 대표주자인 고춧가루도 예사롭지 않다. 전라도 완도산을 가져온다. “해풍이 키운 건강한 고춧가루죠. 병충해가 거의 없어요.” 요즘 유행 따라 김치 양념에 들어가는 낙지, 오징어 등도 언감생심 그의 김치에는 출입금지다. 그저 기본적인 식재료로 담백한 맛을 살린다. 완성된 김치는 시어머니가 “그 옛날”부터 쓰던 고색창연한 독이나 천연유약을 바른 독에 들어간다. 이제 사회생활을 시작한 신입사원처럼 싱그러운 김치는 그 안에서 숨을 마음껏 쉬고 넉넉한 인품을 가진 베테랑처럼 익어간다. 김장하는 날, 손씨의 마무리는 보쌈용 굴, 돼지수육 등으로 한 상을 차려내는 데서 빛난다. 상에는 아삭아삭한 배추전이 일품이다. 소금에 절인 배추로 노릇노릇하게 지져내는데, 짠 듯 안 짠 듯한 맛 사이에서 사각사각 소리가 난다.
“김치는 가풍”이라고 생각하는 그는 요즘 절인 배추를 사서 담그는 김치풍속도에 대해 그다지 고운 시선이 아니다. “배추는 절이는 게 정말 중요합니다. 집집마다 절이는 정도가 다르고 그게 맛을 결정하는데 모두 같아지는 것이 아쉽습니다.” 그는 올해 27살이 된 딸에게 ‘건강김치 만들기’를 꼭 전수해줄 생각이다. 

글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바닷소금의 소중함, 예전엔 몰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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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 없으면 당근이라도 >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한국’이라는 단어는 슈퍼마켓에서 처음 만났다. 샐러드 코너에서 발견한 정체불명의 당근채 샐러드에는 ‘한국식 당근’이라고 쓰여 있었다. 러시아 티브이 프로그램 <알고 싶어요>에 편지를 보낸 시청자 덕분에 이 음식에 대한 내 궁금증도 해결됐다. 프로그램 리포터는 한국식 당근의 기원을 찾아 무려 사할린섬까지 날아갔다! 이 음식 개발자는 소비에트 한인, 즉 고려인들이었다. 소련 시절 그들은 배추나 무를 구할 수 없어 당근채를 썰고 거기에 소금과 식초, 고추를 곱게 간 향신료 등을 넣어 ‘김치’ 대용을 만들었다고 한다.
1999년 연수생으로 처음 모스크바에 왔을 때만 해도 배추 대신 양배추로 김치를 담가 먹거나 그것도 아니면 근교로 나가 민들레를 따다 민들레김치를 해먹었다. 배추는 김장철 즈음에나 교회를 통해 특별 주문해야 구경할 수 있는 귀한 존재였다. 언젠가부터 상점에 중국 배추가 등장했고 ‘용’이라는 이름의 기다란 단무지용 무도 들어섰다.
김치 맛을 결정하는 것은 배추 외에 역시 소금·젓갈·고춧가루인데 이 세 가지 모두 모스크바에서는 구하기 힘들다. 소금이 왜? 여기 소금은 대부분 암염이고, 바닷소금이라고 해도 한국 소금처럼 맛있게 짜지 않다. 배추는 암염에 잘 절지도, 맛있게 절여지지도 않는다. 우리 천일염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것인지, 마치 공기에 감사하지 않듯, 모스크바에 오기 전에는 몰랐다. 고시원만한 기숙사 방에서 샤워기로 배추를 씻고, 책상에서 김치를 버무리다 책에 온통 고춧가루가 튀는 수난을 당해가며 만든 내 겉절이의 ‘기똥찬’ 맛도 몰랐겠지.
과정은 결코 녹록지 않다. 고작 세 포기 배추를 씻는데도, 손은 꽁꽁 얼고 마늘·양파 까다 보면 손과 눈은 왜 이리 매운지. 다행히 이웃이 한국 문화와 김치에 아주 관대한 대만 학생이었다. 매운 고춧가루 냄새가 미안할 땐, 내 별명이 ‘모스크바 김장금’이라고 떠벌려 모면하곤 했다. 다행히 그의 어머니께서 대장금을 사랑하셔서 가끔 한국 김치를 시도해 본다며, 나중에 어머니에게 레시피를 알려 달란다.
모스크바는 이번주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이제 춥고 긴 겨울이 시작된다. 배추를 만나기도 쉽지 않은 계절인 것이다.
글·사진 김진성/모스크바국립대 인문학부 박사과정

그 자체로 성격 좋고 품격 높은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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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크와 찰떡 궁합 > 서울 강남구 신사동 스테이크 전문레스토랑 ‘이트리’ (eatry). 평범해 보이기만 한 서양식 레스토랑의 차림표를 펼치자 신기한 메뉴가 눈에 들어온다. ‘김 셰프 할머니의 레시피로 만든 백김치.’ 그 옆에는 5000원이라는 가격표가 붙어 있다. 전형적인 서양식 레스토랑에 김치가 나온다고? 더구나 김치를 돈 받고 판다고?
이곳의 오너 셰프는 김욱성(41)씨다. 그는 국내에서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호텔경영학을 전공한 뒤 요리학교 존슨앤웨일스에서 조리학을 공부했다. 그야말로 모범생처럼 서양요리를 차근차근 배운 요리사다.
그런 그가 자신의 차림표에 독특하게 우리의 백김치를 냈다. 어릴 때 식탁에 고기 음식이 나오면 으레 김치와 함께 먹었던 기억과 자신의 김치철학 때문이다. “우리 김치가 점점 맛이 없어지는 이유는 어떤 식당이나 공짜이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그냥 버렸던 돼지등뼈도 (돈을 받고 파는) 감자탕이 되자 지금처럼 성공했잖아요. 김치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는 우리 김치야말로 세계 어느 나라 음식과도 잘 맞는, 격이 높은 음식이라고 강조했다. 100가지가 넘는 김치 중에는 세계인의 혀를 사로잡을 김치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그의 백김치는 두툼한 스테이크와 찰떡궁합이다. 살짝 도는 고기의 무겁고 느끼한 맛을 알싸한 백김치가 깔끔하게 잡아준다. 평양이 고향인 할머니가 만든 것 그대로다. 덜 맵고 간도 싱거운 담백한 백김치다.
국물은 많지 않고 설탕은 그저 발효를 위해 아주 조금 들어간다. 갓을 넣어 살짝 독특한 맛을 내고 석이버섯이나 밤채가 들어가 맛의 재미를 준다.
그는 김치에 “왜 돈을 받느냐”는 항의도 받았다. “한국 사람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김치에 돈을 받고 팔아야지.” 변호해준 손님도 있었다. “김치로 샐러드도 만들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하는데 그러면 김치가 김치가 아닌 거죠.” 그는 한식도 서양식을 따라 하는 코스 요리가 아닌, 우리 전통 밥상 형태인 3첩, 5첩, 7첩, 9첩, 12첩 반상으로 구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음식은 문화”이기 때문이란다. 며칠 뒤에 그는 레스토랑 식구들과 또 김치를 담근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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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 기자
한겨레신문에서 음식문화에 관한 다양한 기사를 쓰고 있다. 2000년에 직장인들의 야식을 주제로 한 연재물 '밤참'을 시작으로 먹을거리와 인연을 맺었다. <그곳에 가면 취하고 싶다>, <인생이 있는 식탁> 등 4권의 음식 관련 책을 냈다. MBC <여성시대> 등에 출연해 맛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타고난 체력과 품 넓은 열정을 재산 삼아 맛과 이미지의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문화 정착에 자신의 일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행복의 시작은 밥상이 출발이라고 믿는다.
이메일 : mh@hani.co.kr       트위터 : psols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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