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비빔밥
옛날엔 두껑 닫고 흔들어 먹었다고 ‘뱅뱅돌이’
고추장 대신 고춧가루…먹을수록 ‘연인의 속’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개그맨 박성광이 흔들거리면서 소리친다. 박성광이 옆에 앉아있는 경찰한테 또 묻는다. “첫 키스 기억해요?” “뭐 기억못하는 남자가 어디 있어요. 다 기억하죠?” 박성광이 “7번째 기억해요” 머뭇거리자 박성광이 “첫 키스만 기억하는 더러운 순경”하고 소리친다. 웃음이 천둥처럼 터진다.
케이비에스 주말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에 몇 주 전부터 등장한 코너 ‘나를 술프게 하는 세상’의 대사다. 개그맨 박성광, 허안나가 취객으로 분장해서 경찰관 이광섭과 실랑이하는 개그다. 대사만 보면 그야말로 ‘짠’하다. 1등만 기억하는 세상, 공포스럽다. 한 블러거는 “1등 블러그만 메인에 띄워주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글을 자신의 블러그에 패러디해서 남기기도 했다.
진주 통영 평양 해주…, 많고도 많은 비빔밥, 그런데 유독 전주만?
음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OO음식, 어디가 유명하다 하면 그 집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정성을 담은 것은 마찬가지일지 모르는데 말이다.
우리 음식 중에 ‘한식의 세계화’ 소리와 찰떡궁합으로 딱 붙어서 자주 등장하는 음식이 비빔밥이다. 비빔밥은 훌륭하다. 영양소가 가득한 나물, 그 위에 살짝 올라간 고기, 그야말로 음과 양의 조화가 딱 맞아떨어진 음식이다. 세계적인 가수 마이클 잭슨마저도 반하지 않았던가!
비빔밥하면 전주비빔밥이다. 1등이다. 1등 비빔밥답게 훌륭하다. 맛을 보기도 전에 눈이 즐겁다. 전주비빔밥은 갖가지 나물과 고기 등, 20여 가지가 들어간다. “으흠, 스멜~.”(엠비씨 라디오 프로그램 ‘두시에 데이트’ 개그맨 박명수 버전) 한 숟가락 뜨기만 해도 황홀경에 빠진다. 1등이다. 그러나 우리는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아니다. 전주비빔밥 말고도 우리 땅을 찬찬히 살펴보면 맛난 비빔밥이 많다. 진주비빔밥, 통영비빔밥 등, 과거에는 평양비빔밥, 해주비빔밥도 유명했다고 한다.
최근 전라남도 나주에서 ‘나주비빔밥’이 복원되어 여행객들의 입맛을 끌고 있다. 지난 10월, 안재철(43. 재단법인 영해문화유산연구원)씨가 박준영(70. 전 나주문화원장)씨의 고증을 바탕으로 <향토음식연구소>를 열어 ‘나주비빔밥’복원에 나섰다. 안씨는 “나주하면 곰탕집만 유명한 것”이 안타까워 시작한 일이라고 말한다. “음식은 한 시대를 위해 그 디엔에이가 보존되어야한다”고 자신의 의견을 덧붙인다.
박준영씨는 “비빔밥은 우리 조상이 들에 일 나간 사람들을 위해서 (아낙네들이)밥을 내갈 때 간편하게 하기 위해 섞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나주비빔밥도 비슷하다고 말한다. 다만 나주비빔밥은 ‘들’이 아니라 ‘장’에서 만들어진 음식이다. 나주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교통의 요충지였다. 각종 물자가 모이고 교역이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장이 서면 상인들은 바쁘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서서도 먹고 걸으면서 먹었다. 여관도 많았다. 반찬 여러개를 상에 차린 밥상보다 갖가지 반찬이 한 그릇 안에 들어가는 비빔밥이 인기였다. 만드는 이(여관 주인, 밥집주인)나 먹는 이(상인 등)나 모두 환영하는 음식이었다. 박씨는 “역이 발달한 곳에는 비빔밥이 있다”고 말한다. 특히 나주비빔밥을 ‘뱅뱅돌이비빔밥(뱅뱅돌이장터비빔밥)’이라고 불렀다고 그는 말한다. “장날에 놋그릇에 밥과 양념, 나물 등을 한꺼번에 넣고 닫고는 손으로 돌려 흔들어 먹었다”고 지난날을 회상한다. 그가 어린 시절 본 나주비빔밥이다. 돌리다 보면 “(재료가) 어우러져 한 가지 소리를 낸다”고 박씨는 말한다.
지금 곰탕집으로 유명한 ‘하얀집’이나 ‘남평식당’ 등에서도 한때 이 비빔밥이 있었다. 곰탕에 비해 손이 많이 가서 지금은 거의 차림표에 빠졌다.
암퇘지기름은 필수, 방자유기그릇에 담아내면 “그래 이거야!”

나주비빔밥의 가장 큰 특징은 고춧가루로 비비는 것이다. 고추장을 넣지 않는다. 예전에는 고기 국물 위에 뜨는 기름과 찬 나물을 넣었다고 한다. 따끈한 것은 오직 밥!
안재철씨는 복원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암퇘지기름을 많이 썼지요. (복원시험 할 때)밥알은 튀고, 거친 음식이 되었습니다. (식재료가) 따로 놀 정도로.” 그는 5개월간 매일 10인분~20인분을 만들어서 시험했다고 말한다. 간이 문제였다. 고춧가루만 넣어보기도 하고 간수(소금을 석출할 때 남는 모액)를 넣어보기도 했다. 솥도 크기별로, 다른 두께를 쓰면서 시험을 했다. “나물을 따로 간해야 하나, 아니면 같이 해야 되나”시간이 지날수록 고민은 깊어갔다.
그러나 시험을 해볼수록 조금씩 그 옛날 입맛과 눈맛을 살리면서도 업그레이드된 나주비빔밥으로 다시 태어났다. “예전 방식대로 익히지 않은 달걀노른자를 써보기도 했는데 비릿해서 지금과 어울리지 않아” 뺐다고 안씨는 말한다.
그가 ‘정리’한 나주비빔밥은 이렇다. 암퇘지기름(그릇에 암퇘지를 넣고 끓여 받은 기름)으로 김치를 볶고, 밥 지을 때는 채소(8가지)를 우린 물을 1인분 당 1국자 정도 넣고, 7가지나물은 각각 소금으로 간을 한다. 된장과 고춧가루를 섞은 양념과 익은 밥, 나물, 볶은 김치를 주걱으로 신나게 비빈 다음 그 위에 김, 무채, 육회, 달걀 고명을 올리고 참기름을 살짝 붓는다. 이 모든 것을 데운 방자유기그릇에 담아낸다. 그 다음 한 숟갈 뜬다. “바로 이 맛이야”라며 엄지을 치켜들게 된다.
험한 산자락을 걷는 당당함이 이와 같을까! 넉넉한 인심과 근육질 몸매로 무장한 산장지기를 만난 듯 가슴이 뛰는 맛이다. 숟가락으로 파 들어갈수록, 연인의 속을 알 수 없어 조바심 내는 처자의 마음 같아진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밥알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도 들린다. 1등 못지않은 당당함과 자신감을 갖춘 비빔밥이다. ‘2등도 3등도, 꼴등까지도 기억하는 깨끗한 세상’을 만들어 가면 좋지 않을까!
※<향토음식연구소>에서 운영하는 ‘청옥’ 061-331-9391/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2시/오후 5시~9시. 둘째, 넷째 일요일 쉰다. 1인당 7천원. 정상체중을 유지하는 여성이 먹기에 조금 양이 많을 만큼 푸짐. 하루 만들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어 예약을 하고 가는 것이 좋다.
글 사진 박미향 <한겨레>맛 기자 mh@hani.co.kr
옛날엔 두껑 닫고 흔들어 먹었다고 ‘뱅뱅돌이’
고추장 대신 고춧가루…먹을수록 ‘연인의 속’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개그맨 박성광이 흔들거리면서 소리친다. 박성광이 옆에 앉아있는 경찰한테 또 묻는다. “첫 키스 기억해요?” “뭐 기억못하는 남자가 어디 있어요. 다 기억하죠?” 박성광이 “7번째 기억해요” 머뭇거리자 박성광이 “첫 키스만 기억하는 더러운 순경”하고 소리친다. 웃음이 천둥처럼 터진다.
케이비에스 주말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에 몇 주 전부터 등장한 코너 ‘나를 술프게 하는 세상’의 대사다. 개그맨 박성광, 허안나가 취객으로 분장해서 경찰관 이광섭과 실랑이하는 개그다. 대사만 보면 그야말로 ‘짠’하다. 1등만 기억하는 세상, 공포스럽다. 한 블러거는 “1등 블러그만 메인에 띄워주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글을 자신의 블러그에 패러디해서 남기기도 했다.
진주 통영 평양 해주…, 많고도 많은 비빔밥, 그런데 유독 전주만?
음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OO음식, 어디가 유명하다 하면 그 집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정성을 담은 것은 마찬가지일지 모르는데 말이다.
우리 음식 중에 ‘한식의 세계화’ 소리와 찰떡궁합으로 딱 붙어서 자주 등장하는 음식이 비빔밥이다. 비빔밥은 훌륭하다. 영양소가 가득한 나물, 그 위에 살짝 올라간 고기, 그야말로 음과 양의 조화가 딱 맞아떨어진 음식이다. 세계적인 가수 마이클 잭슨마저도 반하지 않았던가!

최근 전라남도 나주에서 ‘나주비빔밥’이 복원되어 여행객들의 입맛을 끌고 있다. 지난 10월, 안재철(43. 재단법인 영해문화유산연구원)씨가 박준영(70. 전 나주문화원장)씨의 고증을 바탕으로 <향토음식연구소>를 열어 ‘나주비빔밥’복원에 나섰다. 안씨는 “나주하면 곰탕집만 유명한 것”이 안타까워 시작한 일이라고 말한다. “음식은 한 시대를 위해 그 디엔에이가 보존되어야한다”고 자신의 의견을 덧붙인다.
박준영씨는 “비빔밥은 우리 조상이 들에 일 나간 사람들을 위해서 (아낙네들이)밥을 내갈 때 간편하게 하기 위해 섞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나주비빔밥도 비슷하다고 말한다. 다만 나주비빔밥은 ‘들’이 아니라 ‘장’에서 만들어진 음식이다. 나주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교통의 요충지였다. 각종 물자가 모이고 교역이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장이 서면 상인들은 바쁘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서서도 먹고 걸으면서 먹었다. 여관도 많았다. 반찬 여러개를 상에 차린 밥상보다 갖가지 반찬이 한 그릇 안에 들어가는 비빔밥이 인기였다. 만드는 이(여관 주인, 밥집주인)나 먹는 이(상인 등)나 모두 환영하는 음식이었다. 박씨는 “역이 발달한 곳에는 비빔밥이 있다”고 말한다. 특히 나주비빔밥을 ‘뱅뱅돌이비빔밥(뱅뱅돌이장터비빔밥)’이라고 불렀다고 그는 말한다. “장날에 놋그릇에 밥과 양념, 나물 등을 한꺼번에 넣고 닫고는 손으로 돌려 흔들어 먹었다”고 지난날을 회상한다. 그가 어린 시절 본 나주비빔밥이다. 돌리다 보면 “(재료가) 어우러져 한 가지 소리를 낸다”고 박씨는 말한다.
지금 곰탕집으로 유명한 ‘하얀집’이나 ‘남평식당’ 등에서도 한때 이 비빔밥이 있었다. 곰탕에 비해 손이 많이 가서 지금은 거의 차림표에 빠졌다.
암퇘지기름은 필수, 방자유기그릇에 담아내면 “그래 이거야!”

나주비빔밥의 가장 큰 특징은 고춧가루로 비비는 것이다. 고추장을 넣지 않는다. 예전에는 고기 국물 위에 뜨는 기름과 찬 나물을 넣었다고 한다. 따끈한 것은 오직 밥!
안재철씨는 복원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암퇘지기름을 많이 썼지요. (복원시험 할 때)밥알은 튀고, 거친 음식이 되었습니다. (식재료가) 따로 놀 정도로.” 그는 5개월간 매일 10인분~20인분을 만들어서 시험했다고 말한다. 간이 문제였다. 고춧가루만 넣어보기도 하고 간수(소금을 석출할 때 남는 모액)를 넣어보기도 했다. 솥도 크기별로, 다른 두께를 쓰면서 시험을 했다. “나물을 따로 간해야 하나, 아니면 같이 해야 되나”시간이 지날수록 고민은 깊어갔다.
그러나 시험을 해볼수록 조금씩 그 옛날 입맛과 눈맛을 살리면서도 업그레이드된 나주비빔밥으로 다시 태어났다. “예전 방식대로 익히지 않은 달걀노른자를 써보기도 했는데 비릿해서 지금과 어울리지 않아” 뺐다고 안씨는 말한다.
그가 ‘정리’한 나주비빔밥은 이렇다. 암퇘지기름(그릇에 암퇘지를 넣고 끓여 받은 기름)으로 김치를 볶고, 밥 지을 때는 채소(8가지)를 우린 물을 1인분 당 1국자 정도 넣고, 7가지나물은 각각 소금으로 간을 한다. 된장과 고춧가루를 섞은 양념과 익은 밥, 나물, 볶은 김치를 주걱으로 신나게 비빈 다음 그 위에 김, 무채, 육회, 달걀 고명을 올리고 참기름을 살짝 붓는다. 이 모든 것을 데운 방자유기그릇에 담아낸다. 그 다음 한 숟갈 뜬다. “바로 이 맛이야”라며 엄지을 치켜들게 된다.
험한 산자락을 걷는 당당함이 이와 같을까! 넉넉한 인심과 근육질 몸매로 무장한 산장지기를 만난 듯 가슴이 뛰는 맛이다. 숟가락으로 파 들어갈수록, 연인의 속을 알 수 없어 조바심 내는 처자의 마음 같아진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밥알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도 들린다. 1등 못지않은 당당함과 자신감을 갖춘 비빔밥이다. ‘2등도 3등도, 꼴등까지도 기억하는 깨끗한 세상’을 만들어 가면 좋지 않을까!
※<향토음식연구소>에서 운영하는 ‘청옥’ 061-331-9391/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2시/오후 5시~9시. 둘째, 넷째 일요일 쉰다. 1인당 7천원. 정상체중을 유지하는 여성이 먹기에 조금 양이 많을 만큼 푸짐. 하루 만들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어 예약을 하고 가는 것이 좋다.
글 사진 박미향 <한겨레>맛 기자 m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