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삼월엔 “누나”라던 그와 ‘꿩 먹고 알 먹고’

박미향 2011.03.03
조회수 19606 추천수 0

제대로 된 냉면엔 꿩고기가 제격, 역시 ‘겨울맛’
푸욱 고아도 쫄깃쫄깃…똥과 털 빼고는 다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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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꿩냉면

 

 

사진기자들는 봄이 오면 바빠진다. 봄이 만개하기 전에 봄이 오는 소리를 사진에 담아야 한다. ‘계절 스케치’라고 부른다. 남쪽에 때이르게 핀 꽃들이 피사체가 된다. 계절 스케치의 소재로 음식이 등장할 때도 있다. 냉면이다. 음식이 활용되는 예는 냉면이 유일하다. 땀이 줄줄 흐르는 여름과 얼음 동동 뜬 시원한 냉면은 대조를 이룬다.

 

서울시내 이름난 냉면집들이 후보군이 된다. 역사가 오래된 우래옥, 을지면옥, 평양면옥, 봉피양, 을밀대, 강서면옥, 남포면옥, 필동면옥 등. 이 집들 중 사진기자들이 몰려가는 집은 한 곳이다. 장충동의 ‘평양면옥’이다. 시원한 냉면을 먹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 때문이다. 다른 곳도 사람들이 몰리기는 마찬가지지만 길게 줄을 선 모양이 한마디로 ‘그림’이 되기 때문이다.
 

 

‘그림’이 되는 냉면집에서 어디선가 굵은 목소리가…
 

몇 년 전 평양면옥에서 사진을 찍고 냉면 한 그릇 후딱 먹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어! 누나! 오랜만이야.” 냉면을 젓가락으로 들어올리는 순간 어디선가 굵은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ㄱ이었다. ㄱ은 몇 살 어린 동생이다. 사진을 공부하려고 들어간 두번째 대학교에서 만난 사이다. 기억 속에 어리기만 했던 ㄱ은 어느새 건장한 남자로 ‘잘 자라’ 있었다.

 

‘누나’라는 호칭은 여인네들에게 훈훈한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오빠’라는 호칭에 기분이 들뜨는 남정네들처럼. 386세대를 거쳐 486세대가 된 이들은 ‘오빠’라는 소리가 낯설다. 표정관리가 힘들다. 그들이 대학 다닐 때 여자 후배들에게 들은 소리는 ‘형’이었다. 요즘 대학가에서 ‘형’이라고 부르면 “내가 왜 네 형이야” 하는 소리가 돌아온다. 오랜만에 들은 ‘누나’라는 소리가 정겨웠다. “자주 보자”며 헤어진 날, 다른 냉면집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다.

냉면은 이미 알려진 대로 겨울음식이다. 온돌방에서 먹곤 했다. 선조들은 ‘이랭치랭’이라고 해서 차가운 음식으로 찬 기운을 다스렸다. 동치미국물이나 고기육수를 국물로 사용했지만 예전에는 꿩육수나 꿩고기가 인기가 좋았다. 꿩고기는 <규합총서> <증보산림경제> <요록> <음식디미방> 등의 고서적에 개고기와 함께 우리 선조들이 아끼던 식재료라고 기록되어 있다.
 

 

철원의 그 집, 평양 출신 남편에게 전수 받아 2대째
 

강원도 철원군 서면 와수리에는 꿩육수로 국물을 내고 돌돌 만 꿩고기가 고명으로 올라가는 냉면집이 있다. 역시 ‘평양면옥’이다. 이 집으로 향하는 여행길은 재미있다. 버스 안에는 온통 군인이거나 면회 가는 이들로 가득하다. “누나!” 소리 거침없이 지를 여드름투성이의 청춘들이 버스에 앉아 있다.

 

평양면옥은 안필녀(77)씨가 맛을 낸다. 평남 개천이 고향인 남편 이철봉씨한테 전수받았다. 이씨는 안씨가 47살이 되던 해 갑자기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지금은 둘째아들 부부와 함께 운영하고 있다. 안씨는 매일 밤 꿩 4~5마리를 잡아 2시간 이상 푹 끓인다. “꿩은 이상하게 오래 끓여도 살이 무르지 않아요. 똥과 털 빼고 다 먹는 게 꿩고기입니다.” 꿩육수는 동치미처럼 시원하지도, 고기육수처럼 은근하지도 않지만 살짝 비릿한 맛이 옛맛의 품위를 지키고 있다.

 

고명으로 올라간 지단, 삶은 달걀, 오이채, 배와 무 조각, 삶은 돼지고기를 헤치고 파들어가면 양념해서 볶은 꿩고기가 나타난다. 젓가락을 들이대면 동글동글 이리저리 굴러다닌다. 텁텁한 육질의 쫄깃한 맛이 작은 몸뚱어리에 박혀 있다. 개나리가 피는 춘삼월, ㄱ에게 연락해서 ‘누나’ 소리 들으면서 꿩냉면 한 젓가락 먹으리라.
(와수리 ‘평양면옥’/033-458-2044/꿩냉면 7000원, 꿩비빔냉면 7500원, 순대 대짜 1만2000원, 중짜 6000원, 순대국 6000원)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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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 기자
한겨레신문에서 음식문화에 관한 다양한 기사를 쓰고 있다. 2000년에 직장인들의 야식을 주제로 한 연재물 '밤참'을 시작으로 먹을거리와 인연을 맺었다. <그곳에 가면 취하고 싶다>, <인생이 있는 식탁> 등 4권의 음식 관련 책을 냈다. MBC <여성시대> 등에 출연해 맛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타고난 체력과 품 넓은 열정을 재산 삼아 맛과 이미지의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문화 정착에 자신의 일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행복의 시작은 밥상이 출발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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