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려 원장의 온면·갈비찜…이달 말 궁중잔치음식 재현 앞둬
온면
창덕궁 담을 따라 걷다 보면 아담한 한옥이 나온다. 궁중음식연구원이다. 봄 햇살은 100년 전과 다름없이 따스하다. 예순넷 나이에도 세월이 비켜간 듯 고운 자태의 한복려 원장이 반갑게 맞는다. 그는 조선왕조 궁중음식(중요무형문화재 제38호)의 3대 기능보유자다. 2대 기능보유자였던 어머니 황혜성 교수의 뒤를 이어 전통음식의 하나인 궁중음식의 전통을 잇고 있다. 요즘 그는 손이 바쁘다. 오는 29일과 30일 이틀간 ‘정해년(1887년) 조대비 만경전 팔순잔치’의 재현을 앞두고 있다. 이제 겨우 200호를 맞아 잔치를 준비한 <esc>에는 까마득한 숫자다. 신정왕후 조대비(1808년 순조 8년~1890년 고종 27년)는 풍양 조씨로 12살에 조선 익종비로 책봉되었다. 1834년 아들 헌종이 즉위하자 왕대비가 되었다. 육순, 칠순, 팔순 잔칫상까지 받은 장수한 대비다. 한 원장은 ‘닥터 후’의 주인공처럼 우리를 124년 전 신정왕후의 잔칫날로 안내한다.
풍악이 울리고 형형색색의 춤사위가 이어진다. 상궁들의 부축을 받고 납신 신정왕후는 흐뭇한 미소가 그치지 않는다. 왕과 중전, 세자와 세자빈 등 후손들은 대비에게 축하인사를 올린다. 요즘 사람들이 한번쯤 회갑연에서 봤을 상이 조대비 앞에 놓여 있다. 고임상이다. 대비는 연회가 진행되는 동안 이 상의 음식을 탐할 수 없다. 먹는 것이 아니다. 화려한 장식과 음식의 가짓수, 높이를 즐기라고 자손들이 준비한 선물이다. 대신 ‘별찬안’상과 왕과 중전이 올리는 술잔에 따라 올라가는 ‘진어미수 초미’, ‘진어소선’ 등의 상이 마련되어 있다. 고임상은 화려하다. 무려 1자3치(약 40㎝)높이로 쌓은 47기(그릇)가 올라가 있다. 모양새가 기가 막히다. 작고 둥근 오색강정이 탑처럼 차곡차곡 쌓여 있다. 피사의 사탑도, 이집트의 피라미드도 울고 갈 판이다. 유자나 석류, 밀감으로 쌓은 탑도 절묘하다. 메밀국수도 20사리나 한 그릇에 들어간다. 고임상은 화려한 볼거리다. 실제 맛을 뽐내는 것은 잔치 중에 올라가는 음식들이다. 서양식 코스요리가 따로 없다. 상에는 현대인들에게는 그저 신기하기만 한 음식들이 많다. 금중탕은 닭과 쇠고기, 소의 내장, 해물 등을 같이 끓여 낸 탕이다. 연하게 삶은 닭은 장국을 만들고 소의 두골은 전으로 탈바꿈해 탕에서 부드럽게 녹아 들어간다. 열구자탕은 1900년대에 와서 신선로라는 이름을 달았는데, 여러 가지 고기와 내장을 삶아서 신선로 아래 깔고 등골과 생선전, 해삼, 전복, 표고버섯 등을 담고는 은행, 호두, 잣 등을 올리고, 국물을 부어 끓여 낸 것이다.
금중탕
고임상에 올라가는 각색당
금중탕·열구자탕·각색갑회…민가에 나누기도
“음식 하나하나 세세하게 조리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궁중잔치음식은) 식재료를 한꺼번에 조리했어요. 닭, 쇠고기, 돼지를 같이 삶은 뒤에 사용하고 고기의 부산물인 내장도 모두 썼습니다.” 많은 양의 음식을 빠른 시간에 준비해야 했다. 한 번에 만들 수 있는 찜, 탕, 편육, 과자, 떡 등이 많을 수밖에. 소의 콩팥, 천엽, 간 등을 신선하게 담은 각색갑회나 꿩을 통째로 구워낸 전치적도 눈이 휘둥그레진다. 화려한 궁중음식은 잔치가 끝나면 음식 덩어리째로 초대받지 못한 반가로 전해졌고 그 음식은 다시 민가로 전해졌다.
이 엄청난 잔칫상의 재현과정이 궁금하다. 한 원장과 이수자·전수자들은 만경전 잔치를 정확하게 기록한 ‘정해년 진찬의궤’를 바탕으로 재현에 나섰다. 왕족의 잔치는 규모와 절차에 따라 진연, 진찬, 진작, 수작 등으로 나눴다. 의궤는 나라의 큰일이나 경사스러운 일이 생겼을 때 논의 과정부터 의식절차, 행사, 사후의 일까지를 모두 기록한 것이다. 진찬의궤란 한마디로 잔치에 대한 모든 기록이다. “정해년 진찬의궤 전체 5권 중 제2권 찬품조를 보면 조리법은 없지만 식재료와 음식명이 잘 기록돼 있어요. 이걸 참고해 이수자·전수자들과 함께 레시피를 만들었습니다.” ‘만경전 진찬도’도 재현의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3일 동안 이어진 잔치는 낮과 밤, 6차례 큰상이 차려졌다고 한다. 한 원장이 재현한 상은 정일진찬(당일잔치)이다.
열구자탕
국물에 고명까지 온면 한그릇으로 충분
이번 전시에는 다른 때와 달리 인터넷세상에서 만난 이들이 도움을 주었다. 이들을 묶어‘궁연도감’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해석하자면 궁중잔치준비위원회쯤 되는데, 이 모임의 원래 이름은 ‘뒤박당’이다. 한 원장은 농서인 증보산림경제에 기록된 박죽을 보다가 실제 맛이 궁금했다. 지리산에서 농사를 짓는 제자한테 좋은 박을 구해서 박죽을 만들고 그 결과를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다. 팔로어들은 열광했다. “실제 먹어보고 싶다, 궁금하다” 등의 리플이 달렸다. 한식을 문화로 엮으려는 ‘뒤죽박죽당’(줄여서 ‘뒤박당’)이 결성되었다. 박죽 때문에 만들어진 모임이라는 뜻이다. 푸드스타일리스트, 월간지 편집장, 사진가 등 구성원의 면면은 다채롭다. 이들까지 합쳐 이번 재현작업에 참여한 인원수는 50여명이다.
이번 작업에는 한 원장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도 담겨 있다. 황혜성(1920~2006년) 교수의 맏딸인 한씨는 1990년 어머니의 팔순잔치를 준비해야 했다. 어머니를 가장 기쁘게 해드릴 선물이 무엇일까 고민하던 터에 신정왕후 팔순 잔칫상이 생각이 났다. “제자로서 공부하는 모습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주로 궁중의 일상식을 연구하고 원행을묘정리의궤(조선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기록물)를 부분적으로 재현했던 것이 고작이던 시절이었다. “그때 (부분적으로) 재현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 다듬고 완성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우리 음식에 대한 단아한 의지가 엿보인다.
한 원장은 <esc> 200호 축하음식으로 넉넉하고 은은한 우리 음식을 준비해주었다. 돌돌 면이 말아 올라간 온면과 갈비찜이다. “국수는 우리 민족에게 밥보다 좋은 음식이었습니다. 잔치에 먹는 음식입니다. 긴 국수의 면은 먹으면 길한 일이 많이 생긴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국수는 준비하는 쪽에서 보면 국을 따로 준비하지 않아도 국이 있고 고명으로 편육, 채소 등이 올라가니 한 그릇으로 충분히 만족감을 줄 수 있는 음식입니다.” 갈비찜은 농경사회에서 잔칫날 인기 음식이었다.
한 원장은 200호를 맞은 <esc>에 당부했다. “생활의 여유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해주길 바랍니다.”
갈비찜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 온면(4인분)
재료: 가는 국수 300g, 쇠고기육수(쇠고기 양지머리 200g, 물 10컵, 파 1대, 마늘 3쪽, 통후추 약간), 소금·국간장 적당량씩, 달걀 1개, 호박 1/2개, 석이버섯 2장, 실고추 약간
만들기
1. 냄비에 넉넉히 물을 담아 끓을 때 국수를 넣어 심까지 무르게 삶는다. 찬물에 건져 1인분씩 사리를 만들어 채반에 건져 둔다.
2. 양지머리를 덩어리째 파, 마늘, 통후추와 함께 넣어 삶는다. 고기는 편육으로 쓰고 육수는 소금과 국간장으로 간을 맞춘다.
3. 달걀을 황백으로 나눠 얇게 지단을 부쳐 가늘게 채 썬다. 호박은 돌려깎기해 씨를 빼고 채 썬 다음 소금에 절였다가 꼭 짜서 살짝 볶는다.
4. 석이버섯은 더운 물에 담가 잘 비빈 다음 뒷면의 이끼를 없애고 깨끗이 씻는다. 가늘게 채 썰어 살짝 볶거나 끓는 물에 데친다.
5. 국수사리를 뜨거운 육수에 한번 담갔다가 대접에 담고 위에 오색고명을 고루 얹는다. 육수를 대접 옆으로 살며시 부어 상에 바로 낸다.
요리 궁중음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