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재물 한아름 머금은 도미의 풍요

박미향 2011.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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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 없이 번성하라 뜻 담긴, 여경옥 셰프의 ‘파차이자위쥐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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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차이자위쥐안

 

 중식요리사 여경옥(49)씨는 16살에 요리를 시작했다. 세살 위인 형 여경래씨는 그보다 3년 먼저 팬을 잡았다. 형제는 중학교를 겨우 마쳤다. 주방에서 머리 위로 치솟는 불과 지글거리는 팬이 친구였다. 영화 속 무시무시한 중국 칼은 아끼고 배려하고 사랑해야 할 대상이었다. 조금이라도 섭섭하게 대하면 칼은 무서운 속도로 복수를 했다. 형제는 용감했다. 33년이 지난 지금 여경옥씨는 고급 중식당 루이를 운영하고, 형 여경래씨는 그랜드 앰배서더 서울 중식당 홍보각을 책임지고 있다. 형제는 모두 공동대표라는 직함을 단다. “형님은 스승이자 같은 길을 걷는 동료입니다.”
 그가 잊지 못하는 잔치는 어머니의 환갑연이다. 20대 초반의 형제는 선배 요리사의 레스토랑을 하루 빌렸다. 300여명을 초청하고 요리는 형제가 직접했다. 3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가장이었던 어머니를 위해 채소를 볶고 고기를 썰었다. 거기에 존경을 담았다. “그날 제가 했던 요리는 잘 기억 안 나요. 그냥 기뻤어요. 어머니가 참 좋아하셨죠.” 여 셰프는 마흔이 넘어 뒤늦게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서 호텔외식을 전공했다.
 그가 기억하는 두번째 기쁜 날. 1984년 높은 경쟁률을 뚫고 신라호텔 ‘팔선’에 채용됐을 때다. 조별로 요리테스트가 있었다. 당시 ‘팔선’ 주방장인 후덕죽 현 신라호텔 상무가 맛을 봤다. “요리테스트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어요. 조별이지만 이 정도면 괜찮겠다 싶었어요. 그땐 젊었으니까.” 하지만 입사 잔치는 하지 않았다. 일밖에 모르던 청춘은 여유가 없었다. “호텔에서 많이 배웠죠. 당시 일반 중식당은 공장처럼 음식을 빠르게 찍어내기 바빴어요. 호텔은 서비스가 중요하잖아요. 빠르게 썰기보다는 조금 늦더라도 정성스럽게 써는 게 중요했어요.” 2007년까지 꼬박 24년간 신라호텔 주방에서 일했다.
 중국 시시티브이(CCTV) 요리대회 금상, 조리기능장, 경기대학교 외식조리 외래교수 등 그의 이력서는 이제 꽤 화려하다. 힘들 때마다 포기하지 않은 그의 천성 덕분에 얻어진 결과물이다. 잘 웃는 품성과 성실한 자세가 음식에 녹아 있다.
 그가, 뭉쳐 있으면 한 줌 작은 덩어리지만 ‘물을 만나면’ 부피가 커지는 파차이라는 신기한 식재료로 축하음식을 만들어주었다. 파차이는 중국 서북지방 사막지대에서 자라는 이끼 같은 채소다. 원래는 녹색이지만 말렸다가 불려 요리를 하면 검게 변한다. 매생이나 물김 같다. “작은 부피가 커지기 때문에 재물이 불어난다, 번성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파차이로 만든 신기한 소스는 얇게 저며서 돌돌 만 도미 튀김 위에 뿌려진다. 도미 안에는 사각사각한 마가 숨어 있다. 도미는 중국인들에게 행운을 안겨주는 생선이다. “동글게 말아내는 요리법은 둥글게 별 탈 없이 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는 4박5일 중국 산둥에서 열린 공자음식문화세미나를 다녀왔다. 피곤한 몸에도 기꺼이 <esc> 200호 기념음식 ‘파차이자위쥐안’을 만들어주었다.
 파차이는 여경옥이다. 물만 만나면 세상을 휘감는 풍성함을 가진 식재료. 그는 “<esc>도 파차이처럼 번성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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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경옥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 파차이자위쥐안(發財加魚卷)(2~3인분)

 

재료: 도미살 150g, 장마 50g, 전분 50g, 달걀흰자 1개, 불린 파차이(매생이로 대체 가능) 20g, 튀김 식용유 2컵, 청경채 4쪽, 식용유 2큰술, 청주 1큰술, 간장 1작은술, 굴소스 1큰술, 육수 1컵, 참기름 1작은술

 

만들기
1. 도미는 얇게 저민 다음 마를 길게 썰어서 생선살 위에 넣고 말아 준다.
2. 달걀흰자와 전분을 넣고 옷을 만든 뒤 생선말이에 씌워 기름에 튀긴다.
3. 튀김한 말이는 접시에 넣고 청경채도 데쳐 놓는다.
4. 팬에 식용유를 넣은 뒤 청주간장을 넣고 육수를 붓는다.
5. 불린 파차이를 넣고 굴소스 등으로 간을 한 다음 육수와 전분을 풀어서 걸쭉하게 한다. 여기에 참기름을 넣어 소스를 완성한다.
6. 소스를 생선말이 위에 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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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 기자
한겨레신문에서 음식문화에 관한 다양한 기사를 쓰고 있다. 2000년에 직장인들의 야식을 주제로 한 연재물 '밤참'을 시작으로 먹을거리와 인연을 맺었다. <그곳에 가면 취하고 싶다>, <인생이 있는 식탁> 등 4권의 음식 관련 책을 냈다. MBC <여성시대> 등에 출연해 맛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타고난 체력과 품 넓은 열정을 재산 삼아 맛과 이미지의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문화 정착에 자신의 일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행복의 시작은 밥상이 출발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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