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길과 바꿔먹은 ‘지중해의 별미’

박미향 2008.07.11
조회수 4721 추천수 0

[메뉴토크] ‘알바이신’의 소금 절인 대구

 

유학 때 된장찌개와 갈비찜에 스페인인들 ‘따봉!’
내친김에 현지요리 배워…밥벌이 밑천 삼다 전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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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음식점 ‘알바이신’의 주인 정세영(46)씨는 우선 율 브린너처럼 밀어버린 머리가 눈에 번쩍 띄는 사람이다. 알바이신은 스페인 그라나다 지역의 언덕 이름으로, 그 유명한 알람브라궁전에 인접해 있다. 2001년 대학로에 문을 연 알바이신은 흔치 않은 스페인음식점으로 음식 애호가들에게 꽤 유명세를 탔다.

 

2005년 대학로에서 그를 처음 본 뒤 3년만에 두 번째 대면을 했다. 이번엔 서교동이었다. 간판은 똑같이 ‘알바이신’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스페인 노래가 온몸으로 손님을 맞는다. 파란색 테이블과 정씨가 직접 만든 강렬한 원색의 그릇들이 지중해의 스페인 분위기를 짙게 풍긴다. 그에게 어쩐 일이냐고 물었다. 대학로 알바이신을 친구에게 팔고 그 돈으로 이곳에다 새 음식점을 열었다고 한다.

 

한 달에 한 번씩 작업실에서 동네사람들과 파티

 

그는 본래 사진가였다. 일본 ‘도쿄 비주얼 아트’에서 사진을 전공하다 나이 서른두살 때 스페인으로 떠났더랬다.

 

“도시마 야스마사라는 서양화가가 그 곳에 살고 있었지요. 뉴욕으로 가려던 나에게 일본대학 선생님이 ‘넌 스페인과 맞으니 그곳에 가서 그 사람한테 배우라’고 권유해 스페인으로 떠났습니다. 그 화가가 사진전문가는 아니지만, 그 사람의 작품세계가 내 사진에 적합한 예술감각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추천해줬습니다.”

 

그런데 사진을 찍기 위해 지구의 반을 돌아 간 그곳에서 그는 다른 인연을 만났다.

 

“술 좋아하고 노는 것 좋아하니깐 스페인 사람들과 금세 친해졌습니다. 한번은 내 작업실에 동네 사람들을 다 초청했는데, 우리 된장찌개 하고 갈비찜을 만들어줬더니 난리가 났어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면서 맛있다고, 한국음식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더란다. 그 이후 그는 한 달에 한 번씩 자신의 작업실에서 한국 음식으로 만찬 파티를 열었다. 도시마 야스마사 선생도 아주 좋아했다고 한다.

 

“재미가 나더라구요. 그래서 이번엔 거꾸로 내가 스페인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지요. 매일 먹는 건데 제대로 해먹어보자는 심사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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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마요네즈에 찍어 먹지만 오렌지로 대신

 

1999년 한국으로 돌아왔을 땐 이미 스페인 요리가 그의 내면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상태였다.

 

그렇다고 덜커덩 직업을 바꾸기로 한 건 아니었다.

 

그의 인생 행로를 바꾼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사진으로는 밥벌이가 안 되더라구요. 먹고는 살아야겠는데. 작업에 전념하기 위해서라도 돈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즐겨 찾는 우동집이 대중성이 있겠다 싶어 시작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으로 승부를 걸기로 했다. 그 때가 2001년. 그는 서울 하늘 아래 어디를 봐도 스페인 음식점이 없다는 데 착안했다. 스페인음식점 알바이신은 이렇게 탄생했다.

 

-스페인 음식점 자체가 우리 한국사람에겐 아직 생소합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좀더 우리에게  색다른 메뉴라고 할까요? 그런 것 좀 소개해 주시죠.

 

=하나 있기는 있지요. 내가 직접 개발한 겁니다. 메뉴 이름은 ‘바카라오 꼰 나랑하’(bacalao con naranja). 우리말로 하면 ‘오렌지와 함께 먹는 대구’라는 뜻입니다. 소금에 절인 대구와 오렌지를 같이 먹는 것이지요. 원래 스페인사람들은 대구를 마요네즈에 찍어 먹는데(바카라오 꼰 마요네사) 이걸 오렌지로 대신한 겁니다.

 

-대구가 스페인에서도 즐겨 먹는 생선인가 보지요?

 

=맞아요. 우리는 탕으로 많이 먹지만, 스페인 사람들은 주로 소금에 절여서 두고두고 먹습니다.

 

-마요네즈 대신 오렌지를 쓴 이유는 뭐지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느끼한 것 싫어하잖아요. 살찌는 것도 싫어하고.

 

다시 스페인 가 삼겹살 구이 맛뵈고 색다른 요리 배워

 

그가 가르쳐 주는 ‘바카라오 꼰 나랑하’ 요리법은 이렇다.

 

‘대구 한 마리를 하루 동안 소금 1킬로그램에 절인다. 소금을 만난 대구는 쪼그라들지만 맛은 더 쫄깃해진다. 소금을 빼기 위해 하루 동안 물에 담가둔다. 다음에는 월계수잎과 올리브기름이 섞인 것에 담가두었다가 먹는다.’

 

대구 위에는 고명처럼 얇은 토마토 세코(토마토 말린 것)를 얹는다. 그는 “한국의 태양에서는 토마토를 바싹하게 말릴 수가 없어서 토마토 세코는 스페인에서 직접 가져온다”고 말했다.

 

‘바카라오 꼰 나랑하’는 주요리는 아니다. 메인 요리를 먹기 전에 입맛을 돋우는 애피타이저용 음식이다. 입안을 좀더 상큼하게 하고 싶은 사람은, 곁들여 나오는 레몬 조각을 대구에 뿌려 먹어도 좋다. 접시에 함께 나오는, 와인에 절인 복숭아도 그런 데 쓰이는 소품이다.

 

정씨는 최근에 스페인에 다녀왔다.

 

“내가 예전에 있던 곳이 그라나다였는데 또 다녀왔습니다. 이번에 우리 삼겹살 구이를 가르쳐 주고 왔어요. 처음에는 다들 싫어하더라구요. 그런데 기름이 쏙 빠진 뒤에 맛을 보더니 다들 또 환호성을 지르더군요.”

 

그곳엔 정씨의 스페인 요리 스승이 살고 있다. 이름은 바르바라 플란차. 63살된 할머니로 스페인에서 30년 동안 산 독일인이다. 그에게 우리네 삼겹살 구이를 알려주고, 색다른 스페인 요리들을 더 배우고, 스페인 맛집을 탐험하고 왔다.

 

그가 웃으면서 커다란 액자를 보여줬다.

 

“바르바라 할머리가 저한테 준 요리수료증입니다. 폼 나지요?” 그저 재밋거리로 하는 일에서도 정성을 쏟는 모습이 엿보인다. (02)334-5841
 
박미향 한겨레 맛전문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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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 기자
한겨레신문에서 음식문화에 관한 다양한 기사를 쓰고 있다. 2000년에 직장인들의 야식을 주제로 한 연재물 '밤참'을 시작으로 먹을거리와 인연을 맺었다. <그곳에 가면 취하고 싶다>, <인생이 있는 식탁> 등 4권의 음식 관련 책을 냈다. MBC <여성시대> 등에 출연해 맛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타고난 체력과 품 넓은 열정을 재산 삼아 맛과 이미지의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문화 정착에 자신의 일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행복의 시작은 밥상이 출발이라고 믿는다.
이메일 : mh@hani.co.kr       트위터 : psols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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