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쉰 넷! 아득한 기억이지만 그때가 몇 살쯤이었을까? 40여 년 전쯤? 그럼 내가 열네살이고 우리 집 6남매의 막내인 바로 내 밑 남동생은 열 살 때쯤일까? 어느 집이나 막내라면 귀엽고 무엇이든 오냐오냐 내 새끼!!하며 부모의 사랑을 완전히 받고 자란 그 남동생의 별명은 이름하야 골보!! 위의 형,누나들에게 투정이란 투정은 다 부리며 성장한 그 녀석은 성깔따라 지어준 별명과는 달리 귀엽고 잘 생기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 녀석과 우리는 가난하던 70년대에 시골마을에 살면서도 먹고 싶은 것을 그런대로 먹어가며 자라난 것은 점방과 자전거가게에 농사까지 지으셨던 부모님 덕이 컸다. 부모님이 바쁘신 탓에 우리는 곧잘 모여서 비빔밥을 해먹었는데 그것도 지금의 숯불고기 집에서 나오는 그런 양푼이 비빔밥이었으니 ㅋㅋ 우리 6남매의 비빔밥이 그 원조가 아니었을까? 쌀도 풍족하지 않던 그 시절 커다란 양푼가득 밥을 산더미만큼 넣고 고사리나물이며 콩나물이며 상치, 고추장, 참기름을 듬뿍 넣고 꼬꼬댁 우리 집 암탉이 낳은 달걀후라이까지 넣어 쓱싹쓱싹 비비면 양푼 안은 하얀 밥이 금방 벌겋게 변신되어 고소하고 맛있는 비빔밥이 되었다. 너도 나도 머리를 박고 떠먹다보면 우리 배는 남산만큼 불러와도 한 숟갈이라도 더 먹고자 막판엔 치열한 경쟁이 붙는데 그때는 인정사정 볼 것없어 막내도 소용없이 마지막 남은 몇 숟갈은 가위바위보로 정해 이긴 사람이 한 숟갈씩 떠먹었었다 .그런데!! 문제는 잘생긴 동생의 입! 형,누나들의 꼼수로 별로 이기지를 못하던 그 게임에서 어쩌다 한번 이긴 막내는 욕심껏 먹을 생각으로 형,누나들의 숟가락 양 이상으로 떠서 먹는데 입안으로 못들어가고 숟가락 밖으로 떨어지는 무수한 밥알들을 내리보며 그래도 막내는 우걱우걱 잘도 먹어댔다. 그런 한(?)이 있어서인지 막내가 언젠가부터 자기 주먹을 입안에 넣는 맹연습을 하고있는 걸 나는 보게되었다. 그러나 제 주먹이 입안에 들어가기란 쉬운 일이 아닌 법! 급기야 입가가 찢어져 피가 묻어나와도 우리의 비빔밥게임이 끝나지 않는 한 막내는 그 훈련을 계속하고 있었는데 때로는 동생 입이 얼마나 커졌는지 알고 싶어 야~! 한번 넣어봐. 어? 조금만 더! 더! 더! 어? 들어가네? 그러다가 그럼 누나 주먹도 넣어 봐. 하며 자라던 철없고 순수했던 시절. 그 막내가 어느덧 커서 청년이 되었을 때 나는 고생하신 엄마를 위해 싱크대를 부엌에 달아드렸는데 골보가 아닌 익살꾼이 되 버린 막내가 씽크대를 달자마자 개수대 위 오른쪽 문 안으로 커다랗게 써 둔 글귀는 바로 "밥이 있는곳에 인생이 있다"였다. 설겆이를 하고 그릇을 정리해 올릴 때마다 피식피식 웃음이 나오던 그 글이 어찌보면 우스개 소리같지만 진리일수도 있다는 생각은 싱크대를 바꾸기 전까지만도 잉크 색 하나 변하지않고 그 글이 남아있었듯 글속에서 묻어나오는 우리6남매의 알콩달콩한 형제애와 사랑이 여지없이 남아되었기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지금 우리 6남매 형제자매들 각각의 배우자를 만나 각각의 비빔밥을 만들어 먹고 있을테지만 오빠야! 언니야! 그리고 막내야! 그 비빔밥의 맛을 기억이나 하나? 그리고 그 글귀를 기억이나 하나? 나는 기억한데이~ 그래도 그 맛은 안난데이~! 아~!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우리들의 행복했던 시간! 그리고 그 비빔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