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님의 며느리 사랑! 가물치 !

조회수 14580 추천수 0 2012.06.20 13:29:36

나는 딸딸이 엄마다.

큰 아이가 16살, 작은 아이가 14살이니, 생각해보면 꽤 오래전의 일이다.

큰 아이가 2살이 되었을 때, 둘째를 임신했다. 임신 초기에 큰 아이 때와 마찬가지로 입덧을 하여 그나마 좀 먹을 수 있는 과일로 끼니를 대신하던 와중이었다.

부산에 계시는 시아버님께서 서울에 볼 일이 있어 우리 집에 들르셨는데, 직장을 다니며 내 한 몸 추스르기도 힘든 터라 식사도 제대로 차려드리지 못하고, 내내 졸고만 있었다. 임신을 하면 왜 이렇게 졸린 지... 외출을 하려고 남편 차를 타도 꾸벅꾸벅 졸고, 퇴근하고 돌아오면 일단 자고 일어나야 움직일 수 있었다.

시아버님은 반나절 계시더니 부산으로 돌아가셨다.

댁에 돌아가셔서도 내가 마음에 걸리셨는지, 전화로 안부를 물으시더니, 며칠 후 다시 우리 집에 오셨다. 혼자 오신 게 아니라 가물치 한 마리와 함께...

시커멓게 생긴 가물치를 커다란 냄비를 꺼내 넣으시더니, 고으기 시작하셨다.

‘임신했을 때는 가물치가 최고다’ 하시며, 먹을 수 있는지 없는지 내게는 묻지도 않으셨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며느리 몸보신 시키겠다고 일흔이 넘으신 시아버님이 직접 올라오셔서 가물치를 끓여주시니 감사한 마음에 ‘내가 얼마나 행복한 며느리인가. 아버님께 더욱더 잘

해야겠다.’ 고 살짝 마음속으로 다짐도 했다. 하지만, 붕어나 잉어탕도 먹어본 적 없고 비린 걸 싫어하는 내가, 게다가 임신을 하여 입덧까지 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가물치를 먹을 수 있단 말인가! 속으로 참 난감하였다.

다 끓이시고 난 후, 아버님 앞에서 일단 맛은 보고, 잘 먹겠다고 말씀드렸다.

볼 일이 끝난 아버님은 이내 부산으로 출발하셨다.

나는 한입도 먹을 수 없었다. 가물치를 끓이는 냄새조차도 맡을 수 없었다. 가물치와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 자체가 구토를 유발할 지경이었다. 결국 가물치는 무엇이든 먹는 먹성 좋은 남편 차지가 되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임신 6~7개월이 지나자 병원에서 ‘달린 게 없네’ 라는 의사선생님의 암시를 통해 딸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우리 부부는 별 생각 없이 이 사실을 굳이 말씀드리지 않았다. 남편은 4남3녀의 여섯 번째다. 아버님에게는 아들도 많고 친손자도 많다.

그래서인지 막내 며느리인 내게 한 번도 아들을 낳아야한다고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아버님이 둘째도 딸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실 지가 궁금했다. 나와 아이를 생각해서 부산에서 서울까지 가물치를 끓여주시러 오셨던 아버님이라면 손자, 손녀를 가리지 않고 사랑해주실 분이라고 믿고 싶었지만, 우리나라 어르신들의 아들 사랑은 워낙 확고한지라 아버님도 예외는 아니실 거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아들은 많을수록 좋은 것인가!

막내 아들의 대가 끊어지는 것이 못내 아쉬우셨던 것인가!

아버님의 마음을 둘째를 낳고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둘째를 낳고 남편이 전화를 드렸고, 딸이라는 걸 아시자, 첫째 때와는 달리 아이를 보러 오지 않으셨다. 그 이후 둘째가 3살이 넘어가자 셋째를 낳으면 키워주시겠다며, 아들이 있어야 한다고 심심치 않게 말씀하셨다.

아버님이 돌아가신지 2주기가 되어간다. 아이를 키우며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당시에는 더없이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둘째를 반가워하지 않으셨던 아버님이 서운했지만, 며느리가 힘들어하는 걸 보시고 먼 길 오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시고 가물치를 손수 끓여주시던 아버님의 마음에 새삼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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